1. 본문: 롬 9:30-33
2. 명제: 예수님을 걸림돌로 삼는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
3. 제목: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바울 사도는 자기 동족 유대 민족이 구원을 얻지 못한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는 유대인 외의 여러 이방인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대인 가운데 남은 소수자는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 믿어 구원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민족으로서 유대인이 교회 밖에 있는 이유 즉 구원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인 믿음의 의 대신 자신들의 행위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고 하였다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을 전했습니다. 지난주 이어 오늘 말씀도 예수님을 걸림돌로 삼는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어떤 점을 걸림돌로 삼다가 넘어집니까?
1. 하나님의 구원 방식에 걸림돌로 넘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제시하신 구원 방식에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걸림돌이란 다름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분의 일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일들은 구약 성경에서 예언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눈이 먼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바울 사도는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정죄한 것은 바로 그 성경이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구세주에게 걸려 넘어졌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럽게 제시하신 구원을 받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에 관해서 그러합니다. 십자가는 그 모든 것이 구약 성경에 이미 예언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모형들 즉 어린양, 번제물. 희생 제물,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희생당하실 것의 필요성을 선포하는 것들입니다. 히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사실은 여러 선지자들의 글과 레위의 의식과 율법 전체 속에서 예언되어 있습니다. 어째서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까? 바로 이 예수님 때문에 걸려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의 믿음의 진정성을 테스트하는 시험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 사람의 삶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선행을 많이 해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면서 아무리 큰 희생을 한다고 해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행 4:11-12에서 ” 행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 바울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생명과 가르침 특별히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 터전이 되어 그 위에서만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직 구원의 유일한 터 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반석이요. 기초석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에는 두 가지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한 반응은 예수님을 만나 그를 믿고 신뢰하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구원을 위해 자신 속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 신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안식처요, 확신의 터인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무엇이 따릅니까? ”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리라 ”또 다른 반응은 예수님에게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들에게 “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 ”이 되셔서 결국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이며 당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가진 관계는 절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와 반응으로 말미암아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인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넘어지는 사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자체가 그들의 걸림돌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그 자체가 그들에게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야가 말구유에서 태어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찬란한 영광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야는 하나님의 위대한 왕으로 위대한 군사로 위대한 정치적인 인물로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중심이 되는 그들만의 세상 왕국을 꿈꾸었는데 그런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지상에 계실 때 낮아지신 상태로 계셨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아무런 세상 교육을 받지 않으신 분으로 나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에는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 저가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글을 아느냐? 이 자가 누구이냐? 스스로 선생 인체 하는 자가 누구이며 그가 무엇을 행하느냐 ”유대인은 예수님의 인격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것들 때문에 넘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주장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심을 주장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을 격노케 했습니다. 또 다른 걸림돌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시지 않는 사실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예루살렘의 왕으로서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군대도 모으시지 않으셨습니다. 로마 제국과 전쟁을 선포하거나 또한 자신을 열방중의 뛰어난 왕으로서 높이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하시지도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큰 이적을 보이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저분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구세주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왕으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절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넘어지게 한 이유인 것입니다. 어째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하십니까?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에게 졸라 대었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거침돌이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체포되어 재판에서 정죄 받았지만 한마디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마음대로 하는 대로 맡겼습니다.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하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흉흉한 바다의 물결을 잠잠케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 거기서 내러 와 보라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네가 자신을 구원해 보라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내려와 보라 ”조롱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참으로 연약하고 철저한 실패와 조롱과 수치를 당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십자가야말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이 거짓임이 명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 너 하나님의 아들아 ”라고 비웃었습니다. 이것이 넘어짐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나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나온 교훈입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을 화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십자가를 전파하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십자가는 오직 유일하신 구원의 방식이라는 말입니다. 롬 10장 4절에서 바울은 “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나니 ”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신들은 구원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율법을 지킬 수 있고 모든 유대인들의 노력과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수고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예수님의 그 말씀이 그들을 화나게 한 것입니다. 31절 “ 율법의 의를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여기에 하나님의 선포가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법에 이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너희들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들이 하나님의 법을 다 준행할 수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오시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씀 하시는 입니다. 또 “ 인자의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바로 이것이 유대인들을 넘어지게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는 바로 그것이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넘어지게 한 것은 십자가의 가르침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피가 오늘 사람들에게 미워하고 조롱을 받습니까? 사람들이 십자가의 가르침을 미워하는 유대인들의 행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로 하여금 넘어지게 한 가장 큰 원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의 자기 신뢰와 교만과 자기 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하는 어떤 일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인간 자신과 자신의 선한 행위 자신을 믿는 모든 신념 인간 자신의 모든 행실 아름다운 생각들 이 모든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 더러운 옷 같으며 ”분토와 배설물 같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의를 세우고자 애써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완전한 자는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생에 대한 진단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인생이 죄인이기에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과 오늘 날 많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 사람들의 넘어짐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유대인은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정말 큰 비극입니다. 물론 이 비극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스도를 거치는 반석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33절 “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 여기 “ 시온에 ”라는 말을 주목하십시오. 시온은 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메시야가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어디서 오셨습니까? 유대인 중에서 오셨습니다. 자기 백성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사람이요. 의를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을 영접치 아니하였더라 “소도“ 개도 자기 주인을 알아보는데 유대인들은 자기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여러 이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거치는 반석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사실상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임을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어째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복음은 세상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의 방식 즉 구원 방식입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의가 바로 예수님을 통한 믿음의 의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성경의 주제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것을 배척했습니다. 오히려 우상을 숭배하고 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의를 영접한 것입니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 하나님께서 영광이신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인을 대신하여 속죄 제물이 될 것이라고 예언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형벌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을 배척했습니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배척한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으실 수 있다는 것을 배척한 것입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들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마치 죄인이 율법을 완전히 이룬 것처럼 여김을 받는 놀라운 하나님의 진리를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되는 그 진리를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과 많은 인생들이 이 모두를 거절했습니다. 새 생명과 능력과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싸워야 할 도움마저 거절했습니다. 영광과 소망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다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받으라고 하는데도 말입니다. 유대인과 인생의 이런 넘어짐의 비극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의 교만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교만 즉 자기 스스로 하나님과 하늘의 영광을 얻기 위해 합당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자기는 정말 무능하며 소망 없고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즉 죄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교만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를 배척합니다. 지성의 교만 도덕성의 교만 선행의 교만 성취의 교만 이해의 교만 등입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비극의 종말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으로 삼은 사람은 누구든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이 세상에서 결코 만족함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사람은 건강을 잃어버렸을 때 질병이 찾아왔을 때 죽음이 찾아왔을 때 시련과 고난이 찾아왔을 때 그는 아무것도 자신이 기댈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될 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마치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자신이 의의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그가 자랑하고 믿었던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에 자신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영원히 지옥 가운데서 자신의 교만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고통 가운데 떨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유대인과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모든 인생들이 만날 비극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는 “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나 하리니 ”이것이 예수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합니다. “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 하리니 ”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