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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 존재하는 세상 정신(수정본)

wordlove 2021. 3. 5. 07:47

1. 본문: 12:1-2

2. 명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 세상은 마귀의 통제 속에 있기 때문이다.

3. 제목: 교회 안에 존재하는 세상 정신(수정본)

 

 

1. 갈등

바울 사도는 예수 믿어 은혜로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2절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성경에는 이 세상, 이악한 세상, 이 세대' 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다가올 하나님 나라와 대조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갈 1:4에서1:4에서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여기 이악한 세대라는 말이 나옵니다. 요일2:15-16에서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여기 이 세상이란 말이 나옵니다.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들을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혹은 이 세대의 통제를 받거나 이 세상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 갈등 심화

바울 사도가 이 세상이라고 말할 때 이 세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때로는 세상이라는 말은 물리적인 우주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리적인 우주 세계는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논리로도 물리적인 우주 그 자체에 나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관점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세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도 않고 하나님께 통제를 받거나 지배를 당하지 않는 삶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따라서 사람은 모두 세상에 속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또 세상의 다른 의미는 타락의 결과로 마귀에 의해 주도되는 삶과 행동을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3-4에서 이런 말씀을 읽습니다. 고후 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고후 4:4 그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왜 사람들이 예수님 믿기를 거부합니까? 복음을 거부하는 마음은 세상 신 즉 마귀가 그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이란 것은 하나의 사고방식 즉 하나님을 떠나 있을 뿐만 아니라 마귀에게 통제되는 삶을 뜻합니다. 세상이라는 말에 대한 또 다른 정의는 육체라는 용어입니다. 성경에서 육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이 세상적인 사고방식 즉 가치관과 세상적인 유의 삶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됩니다. 물론 사람의 몸이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또는 한 개인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그 말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말해서 신약성경에서 사용될 때 특히 바울 서신에서 사용될 때는 세상이라는 말과 육체 혹은 죄악 된 본성의 뜻인 육신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이라는 이 용어를 살펴보는 그 의미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보다 육체를 따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더 명확하게 구분하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마귀를 따르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에 관한 이 신약적인 가르침 즉 세상, 육체, 육신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않고는 행실과 도덕에 관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세상 사람들은 이 교훈을 모릅니다. 그들은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육체와 영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이 점에서 소경입니다. 도덕주의자와 인본주의자들은 이것을 전혀 이해 못합니다. 오늘날 교육이 인간의 난제를 푸는 일에 있어서 철저하게 실패하는 원인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교육은 세상과 육체 혹은 육신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세상 교육은 마귀를 믿지 않으니 그 전체 논점을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적인 교육은 인간의 난제의 깊이를 알지 못하니 그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물론 정치가들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여러 나라들에서 이 인간의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가 법률가 관료들이 애를 쓰지만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 세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귀와 악의 세력들이 인류 생활 전체에 주도적으로 파고드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은 이 세상 신 즉 지금 불순종하는 아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인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2”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요한 사도는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속하지만 이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한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 교훈의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않는 한 성경적인 교훈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점을 명확하게 알지 않으면 구원에 대한 성경의 교리나 성경의 다른 교리들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처럼 마귀와 그 세력들이 이 세상의 삶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 특별한 말씀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세상의 여러 난제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간에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매일 일어나는 여러 가지 파행, 분쟁, 고통, 고뇌를 가진 이 세상이라는 말의 영적 의미를 바로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6.25 전쟁을 김일성 한 사람을 가지고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거듭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그 피상성 때문에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러한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 만일 우리가 이 악한 것만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다. ”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김일성이가 죽자 더 악한 김정일이 등장했습니다. 김정일 이가 죽자 더 악한 김정은 이가 등장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저분은 더 좋은 대통령이 되지 않겠느냐라고 기대했지만 역시로 끝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지 말라 세상이 어떠하기에 그러합니까? 요일2:15-16”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합니다.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 대한 훌륭한 요약적 진술입니다.

 

3. 전환

그러나 그보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라는 용어를 너무 협소한 한계 속에 국한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이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말할 때 소위 세상적인 어떤 쾌락에 참여하지 말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극장이나 영화관, 술집, 어떤 곳에 가지 않기만 하면 자기들은 세상적인 것에 빠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텔레비전 수상 기니 컴퓨터를 가지지 않는 것으로 그 말씀을 적용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 '이라는 말에 대해서 얼마나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을 단순히 돈의 문제에 국한시켜 생각합니다. 세상적인 것은 돈을 사랑하는 것과 동의어 이거나, 돈이나 소유를 가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겨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세상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면 그 경우 그 사람이 매우 돈을 좋아하고 돈을 더 많이 소유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될 정도였습니다. 돈을 축적하고 소유를 많이 가지기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세상 적으로 불렸습니다. 물론 그런 것도 포함이 되죠. 그러나 세상적인 것을 거기에만 국한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라는 용어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았듯이 그것은 사람 전체 삶 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무엇입니다. 실제 행동뿐만 아니라 사고방식 즉 사람의 가치관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만날 수 있는 위험은 이 권면을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과정 중에서 두 극단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극단은 율법적인 협소함입니다. 다른 극단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 세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두 극단 중 한 곳에 빠져있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먼저 우리의 사고방식의 영역에서 살펴보기로 합시다. 세상 적이라는 것은 우선적으로 사고방식의 문제 마음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극은 교인들의 사고방식이 세상을 본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인기 있는 신앙 서적이 실상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진리를 부정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 책들은 세상의 사고방식을 기초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대답은 이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보다 앞선 이전의 모든 사람들과 전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가진 위대한 지식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다. 우리는 21세기 사람들이다. 우리는 과학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 신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 과학적인 지식들이 초자연적인 이적적인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한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한 주장이야말로 이 세상을 본받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까? 이제 더 이상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고 분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리에 있는 사람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 또 읽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함께 일해보고 함께 술을 마셔 보아야 합니다. 일과 즐거움 속에서 그와 함께 섞여 보고, 그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고 나서, 그 거리에 있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복음을 제시합니다.. 거리에 있는 세상 사람들이 가르쳐야 할 모든 교훈을 결정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불트만이라는 독일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의 전체 기준은 바로 이런 현대적인 접근 방식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지식과 학식 때문에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트만은 복음을 신화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성경의 이적적인 모든 요소를 다 배제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그는 주장하기를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십자가에서 인간 예수가 죽었다는 것뿐이다. 몸의 부활도 확실치 않고 동정녀 탄생도 확실치 않다. 이 모든 것들은 1세기에 굳혀진 것이니 다 내버려야 한다.. 불트만은 현대인에게 메시지를 제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러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 세상을 본받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이 그러한 식으로 설교하고 가르칠수록 그들의 말을 청종하는 사람들이 더 적어졌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부흥이 아니라 더 침체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현대인들이 다른 시대의 사람과 다르다고 말하지 않으며 특별히 그들을 달래주는 말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현대인들이나 옛날 사람들이나 똑같은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도 죄인들이라서 거듭날 필요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고방식 속에서 이 세상을 본받는 두 번째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 전도의 영역에서 조차 발견됩니다. “ 현대인들은 더 이상 설교나 긴 예배를 싫어하고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긴 설교를 하지 말라, 오히려 그들에게 영화를 보여 죽어라 "는 주장합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세상은 너무 엄숙한 것을 싫어한다. 진지해지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복음전도 방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상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논증하는 것을 싫어하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나 간증이나 예화를 좋아한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그것을 제시하라 이것이 세상을 본받는 것이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성령도 그리스도도 없는 사람들을 표준으로 삼아서 제시된 성경 진리 자체를 백안시하는 순간 이미 이 세상을 본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통제해야 된다는 원리를 허락하는 순간이 세상을 본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의 영역으로 나아가 보면 신 도덕성이라고 불리는 것의 가르침도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 가르침의 전체 전제는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해야 할 이들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동성애, 이혼, 결혼, 낙태, 사형, 인권 등등의 인간의 문제에 있어서도 정확히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모든 법도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견해에 입각해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방식입니다. 이것은 계시된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에서 성경은 남자든 여자든 모든 인간이 타락하였고 왜곡되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사람들은 참된 방식을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세상은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국 백성들은 우리의 사고방식이 세상의 사고로 말미암아 정해 지거나 조종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혼, 결혼, 동성애, 사형 문제 등등에 대해서 세상이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묻고 우리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 우리의 관념들, 우리의 삶의 원리들은 등등 모든 것들이 위로부터 주어진 계시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4. 대단원

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따라가야 할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요일 2:16-17“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의 것은 일시적입니다. 오늘 이것이 옳다고 하다가 내일에는 이렇게 저렇게 변합니다. 세상의 결정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영원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천국 백성은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의 원리를 따르는 자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초대 교회 크리스 톰이란 교부는 온 세상이 나를 거부하면 나는 온 세상을 거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영원히 진리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자입니다. 이것이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도 드리는 일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