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롬 12:12
2. 명제: 그리스도인은 삶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3. 제목: 인내와 기도
12절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바른 관점을 취하라고 말씀합니다. 먼저 소망 중에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삶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치명적인 실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칩니까? 이 악한 세대는 소망이 없습니다. 이 세대는 심판 아래 있습니다. 반면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은 골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이것을 이해해야 두 번째 권면 “ 환난 중에 참으라 ”라는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 참으로라는 말은 소망 중에 참으라는 말 뒤에 따라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그 소망에 집중시키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동안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도는 “ 환난 중에 참으라.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언급하는 순간 그는 환난으로 나아갑니다. 이것들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환난은 무엇입니까? 원어적인 의미는 무겁게 내리누르되 거의 부수뜨릴 정도까지 압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환난과 시련은 여러 방면에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환경들의 결과로 일어날 수도 있고 또는 시험을 통해서도 오고 어떤 때는 핍박을 통해서도 옵니다.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시험하려고 보내지는 것입니다. 여러 환난이 심령을 짓눌러대고 생각을 압박하고 마음을 눌러댑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그 환난에 대응해야 할까요? 순서를 보십시오.
먼저. 소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은 “ 이 세상의 일들이 너무 무서워?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결코 안 됩니다. 그 환난을 보고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환난에 지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환난과 시련이 나를 넘어지게 내버려 두면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족한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불평하거나 불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피곤해지고 환난이 어째서 나에게 오는가? 또는 우리 신앙은 참이 아닌가?라는 불평과 의심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실족의 길이 됩니다. 인간 본성이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본성은 불만하고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외인들과 나그네들과 순례자들로 악한 세상을 통과하여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해서 예비하신 영광으로 이어지는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불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약하면 환난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그리스도인들로 보였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되어 나가는 동안에만 그러합니다. 시련이 닥쳐오면 금방 붕괴가 됩니다. 사도는 “ 날씨 좋을 때만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시련과 시험을 만났을 때 넘어지지 말라. 결코 그렇게 하지 말라 ””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그 환난에 대응해야 할까요?
둘째는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은 “ 참아 견디어 내는 인내심을 가져라 환난 중에 견고하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환난을 만난을 때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놀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낭만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아마 세상 심리학의 영향력을 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항상 사실주의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기대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이 세상에 대한 참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악하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교회에 오면 모든 것이 잘되고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 복음입니다. 진리가 아닙니다. 인생에 대한 참된 증상을 말해주는 것이 진리입니다. 성경은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나 환난을 당하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미리 경계를 하는 것은 미리 무장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에 어떤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이 환난을 만나더라도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도 벧 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기괴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칭찬하고 어떠한 핍박도 만나지 못하면 그 사람이야 말로 진짜 그리스도인이지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징계를 받는 것은 사생자가 아니라 자녀들입니다. 교회에서 인기를 얻는 것만큼 무섭고 두려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우리의 복되신 주님 이시오 구주께 일어난 일임을 인식하게 될 때 환난 중에서도 능히 인내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님을 그렇게 대했습니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그리스도의 생애를 보십시오. 그가 당한 고난과 환난을 보십시오. 보나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거기는 구주께서 가신 길 종이 어찌 그 길을 밟지 않으리오. ”주님께서는 환난을 위해서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이러한 것들을 견디어 내는 것은 주님이 가신 그 자취를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매우 큰 특권입니다. 예수님께 무엇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십시오. 히 12:3-4 “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거역을 참으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주님과 같은 무리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환난을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여기 환난 중에 참으라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것은 환난이 아니면 가르칠 수 없는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정말 환난 이외에 어떤 것도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고집이 센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모난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통과해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인내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환난이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가르치도록 하십시오. 일이 잘될 때는 생각지 않습니다. 인생이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옳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환난이 오면 낮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교만과 이기심을 발견합니다. 또 자신 속에 있는 패역한 정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 자신이 믿음이 온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환난과 시련이 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까지 자신이 얼마나 가련한 그리스도인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결국 시련 때문에 그 점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말합니다. 그 환난을 통해서 자신을 위해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도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시련을 통해서 배우게 되고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롬 5:3-4” 롬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정말 체험은 놀라운 선생입니다. 환난은 또 다른 사람에게 동정심을 갖도록 가르쳐 줄 것입니다. 병든 사람에게 가장 동정심을 가지는 자들은 자기 자신들도 그 병을 앓아 본 사람입니다. 병이 사람들에게 유익한 작용을 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고 동정심과 이해의 태도를 가지도록 유도합니다. 환난을 거쳐야만 그러한 교훈을 배운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죄가 우리에게 행한 일 때문에 우리가 그런 유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온전치가 못합니다. 옛사람의 본성에는 떼내어 시궁창에 던져야 할 것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 일은 환난의 놀라운 약재입니다. 그리고 같은 환난은 다른 사람들이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그들과 짐을 함께 나누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다른 사람들이 시련을 당할 때 동정과 이해의 말 한마디는 그들을 위해서 하도록 가르쳐 줍니다.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때로 주님께서는 직접 그 일을 하시기도 하시며 때로는 징계를 허용하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에는 마귀로 하여금 시련을 불러오게 허용하시기도 합니다. 욥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가련한 욥은 이 모든 시련을 힘들게 투쟁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는 나중에는 정말로 복된 결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다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지혜로 환난이 여러분을 다루도록 허용하거나 그런 처지에서 인내하기만 하면 그 환난을 통해서 좋은 것을 얻어 낼 때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시 119편의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시 119:65-67” 시 119: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 하셨나이다 시 119:66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시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이것이 먼저 믿은 조상들의 고백입니다. 그들이 당한 시련보다 그들에게 더 유익을 주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고통을 겪은 성도들의 한결같은 간증들입니다. 그들은 환난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방식을 통해서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는 더 깊은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경기장에서 감독은 선수를 훈련시킵니다. 그 선수의 근육은 아프고 심지어 끔찍한 느낌마저 들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는 더 강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것을 기쁘게 여기십시오. 어째서 입니까? 약 1:3-4” 약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련은 믿음의 진정성을 검증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부활의 소망을 상기시키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벧 전 1:6-7” 벧 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 환난과 시련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과 거기 하늘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영광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우리의 불안전함 때문입니다. 일들이 잘되어가고 시련과 난제가 전혀 없을 때에 우리는 오직 이 세상만을 위해 살게 됩니다. 다가올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하늘과 하늘의 영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환난처럼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많이 바라보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환난 중에 참으라. 그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세상이 여러분에게 유익하게 만들 것이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기 조차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마다 징계하신다 ””라고 하셨는데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그러한 시련의 시간을 통과하도록 허용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신 모든 하나님의 교훈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그 환난에 대응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은 “기도에 항상 힘쓰며”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다가올 세상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상기하도록 해 줍니다. 물론 그것은 기도라는 문제로 이끌어 줍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눅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살 전 5:17“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소망! 환난! 기도! 이것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난 소망 기도는 항상 같이 갑니다. 주님은 기도는 낙심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 기도입니다. 이 세상은 마귀의 지배를 받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은 기도하기를 싫어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거나 영적 갈등을 느끼지 못하거나 영적 무지 때문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은 하나의 영적인 싸움으로 비유했습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정말 엄청난 투쟁이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지 못한다면 영적으로 게으르거나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마귀와의 영적 전쟁 중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신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거듭남에 대한 그릇된 관점을 가지고 있거나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 때문입니다. 사도가 “ 기도에 항상 힘쓰라 ”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기도는 심리학적인 처방 요법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는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것은 기도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말하는 자기 암시라는 심리요법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면전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하나님과 가까이 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라는 것은 항상 하나님과 인격적인 접촉을 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릴 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 알고 위안을 얻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위로를 받습니다. 기도는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내 문제를 아뢰고 인도함을 구하는 요청입니다. 기도하는 그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늘 가까이하고 싶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을 받습니다. 기도는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청해야 합니다. 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받습니다. 약 4: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이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참된 기도는 친밀하고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를 대적합니다. 그래서 환난을 당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긴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이기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항상 주님과 교제를 유지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사도처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