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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정신(수정본)

wordlove 2021. 4. 8. 05:48

1. 본문: 5:21

2. 명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정신은 그리스도를 경외함 때문이다.

3. 제목: 그리스도인의 정신

 

1. 갈등

믿음 생활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를 지배하는 정신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것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피차 복종해야 될 이유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경외심이란 공포심과 다릅니다. 인격적인 관계가 없는 사탄에 대해서는 공포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랑을 통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예수 믿은 신자는 하나님에 대하여는 존경심에 기초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것이 경외심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어떤 것이라도 사랑에 기초한 경외심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서로 복종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합니다. 이 원리의 적용에서 남편에게 엡 525절에서 남편들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져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2절에서 아내들아 남편들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어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복종하되 주께 하듯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61절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들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6:4절에서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으로 양육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6:5-6절에서 종들아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종들은 상전에게 주게 하듯 하라고 말씀합니다. 6:9절에서 상전들아...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상전들은....“ 종들에게 하늘에 상전이 있음을 알고 위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인 남편, 아내, 부모, 자녀, 근로자, 사장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서로 복종해야 될 이유는 5: 21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도리와 이유를 알지 않고 단순히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를 지배하는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2. 갈등 심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그분의 속죄 사역만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님이신 예수님에 의해서 전적으로 지배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 즉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믿습니다. 그분을 주님으로 믿지 않고서는 그분을 구세주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주인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그 일이 좋고 옳기 때문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함에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하나님 즉 나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각에 혁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치 사회 교육 단체의 회원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관례 사회적인 규범 사회적인 예의 에디 겟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과 불신자들의 모든 행동의 동기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왜 노인이나 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합니까? 왜 그 일을 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함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관습은 겉치레 일 수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깊은 동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그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남편, 아내, 자녀, 부모, 종과 상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서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법 즉 율법도 일차적인 동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차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함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시오 구세주이신 예수님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언제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그를 영화롭게 하며 언제든지 그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은 항상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왜 그런 일을 하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517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점이 다릅니다. 비 그리스도인은 왜 그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세상 법을 따라 하든지 다른 사람을 모방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유심히 살피고 그와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함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마지막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13: 13-15“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은 먼저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피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본이 되기 위해서 먼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분은 언제나 영광의 주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종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인자의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 물로 주기 위함이라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3. 전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은 주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은혜를 보답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주셨다고 믿는다면 우리의 소원은 그분을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들에게 주의 계명을 순종함으로 주의 이름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높이 되고 영화롭게 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에서 자신은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나이다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삶의 목표였다는 기도였습니다. 그런 다음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예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다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싫어할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우리를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밖에서 보고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나 자신을 과시하고 자기 우월을 드러낸다면 이건 세상 사람들이나 매 한 가지네 세상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비웃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화합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내세웁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고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며 우리를 중생시켰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근본적으로 달라졌고 우리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저희로 인하여 영광을 받았나이다 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면 내가 즐거울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자신을 잊은 사람입니다. 그의 소원은 예수님에 대한 감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열심을 가집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이 주님을 믿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유심히 살핍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것을 볼 때 세상 사람이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삶을 지배하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의 의미를 다른 성경구절에서는 주님을 실망시키거나 근심시키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2:13에서 우리는 그의 소유요 그의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분과 우리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내려다보십니다. 그분의 평판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가 저희로 영광을 받습니다 그분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우리를 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유일한 빛입니다. 나는 주님을 실망시키지는 않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신 분을 실망시키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것이 경외심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입니다. 그것이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요. 주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요. 주님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입니다. 주님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입니다. 어떻게 하든 주님을 슬프게 하거나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경외감 속에는 우리의 생활과 성화의 문제와 우리의 봉사에 있어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고전 3: 10-15 “ 고전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고전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전 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고전 3: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고전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고전 3: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주님 앞에 우리는 누구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 받은 사람 가운데 불 가운데서라도 즉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공적이 나무나 풀이 짚과 같아서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임하시자 모든 공적이 다 타버렸습니다. 굉장히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물론 구원과 관련은 없습니다. 다만 상급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나무나 풀과 집처럼 가치 없는 것들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심판의 불에 의해 소멸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만나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면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두려운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경외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후 5: 9-10 “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모든 인생은 주님 앞에 서서 그분이 보시는 앞에서 그분의 얼굴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에 어떤 것을 느낄 것 같이 생각됩니까? 아예 나는 당신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당신이 흘리신 피를 믿습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런데 어는 날 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고 당신의 계명들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내게 이르신 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완전히 거룩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내 자신을 복종시키지 않았습니다. 내 고집만을 세우고 육에 속한 자연인이 하는 대로 행했습니다. “이렇게 살면서 주님의 눈을 쳐다보는 것이 어떠하리라 상상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베드로에게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주님의 이 말씀을 부인했습니다. 주님이 체포되어 심판을 받자 하녀가 베드로에게 너도 예수와 한편이지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자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예수 같은 사람을 모른다고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그 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베드로를 바라보셨더니 베드로는 밖에 나가 통곡했더라주님은 베드로에게 한마디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바라보시기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눈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차라리 주님이 자신을 향해 책망하시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베드로를 통곡시키신 것은 주님의 바라봄이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심판입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에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아내들아! 남편들아! 상전들아! 종들아! 부모들아! 자녀들에게!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핑계치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같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십시오그것이 예수 믿는 우리의 유일한 삶의 정신입니다. 삶의 동기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분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4. 대단원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종이 되시기 위해서 낮아졌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겸손이라고 부릅니다. 2: 2-11”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러분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어렵습니까? 자신을 복종 시키는 것이 어렵습니까? 해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오직 이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서로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의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함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사랑의 구세주이십니다.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그래서 거룩하신 사랑의 주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순종합니다. 이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그리스도인 사이에도 서로 복종하는 것으로 열매 맺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