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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결론이 낳는 오류"수정본"

wordlove 2021. 4. 16. 07:47

1. 본문 롬 14:1-4

2. 명제: 급한 결론은 항상 무서운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3. 제목: 급한 결론이 낳는 오류

 

 

1. 갈등

지난 시간에 중립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배웠습니다. 본문에서 다루는 중립적인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특정 음식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이런 문제를 다룰 때 어떤 결론을 쉽게 내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고통의 절반은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데 기인합니다. 판사가 쌍방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고 급하게 결론을 내린다면 나쁜 판사입니다. 기독교인 중 일종의 빠른 계산기 기독교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면 계산기로 두드려 봅니다. 그러면 즉시 답이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롬 14장 한 장 전체를 동원해서 이 문제를 다룹니다. 단번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경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결론을 향해서 계속 나 아가다 보면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그런 방식을 구사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제시하는 첫 번째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본문은 먹는 문제를 다룹니다. 사도는 더 약한 형제는 고기를 전혀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다고 말합니다. 초대 교회 안에는 유대인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두 분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초대 교인 중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는 서로 다른 난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어떤 음식에 관한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특히 어떤 유의 고기나 어떤 물고기들은 먹지 말라는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구약 레위기를 보면 그런 음식들이 나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이 율법이 자신들에게 해당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이교도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이교 신전을 출입하면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우상에게 제물을 드렸습니다. 신전에서 제물로 바쳐진 고기 중에는 고기 시장에 팔리곤 했습니다.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고기를 먹는 것이 나쁘다고 느꼈습니다. 또 우상 숭배와 연관되어 그 고기는 더럽혀졌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기 먹는 것을 삼가고 있었습니다.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는니라이런 사람들은 채소를 먹었습니다. 딤 후 4:1-8절에 보면 혼인을 금하고 채소만 먹는 것을 장려하는 교훈이 당시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날에도 이런 사상이 인기가 있습니다. 일중의 금욕주의 신비주의 요소를 가미한 거짓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이런 사상이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결코 채식주의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채식주의를 다루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어떤 이유로 채식주의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이유로 이런 식이요법을 이행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가 문제 삼는 것은 이런 것을 종교적인 문제로 양심의 문제로 삼을 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의학적인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결코 사도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종교적인 의무나 양심의 문제로 여기고 채식주의 자가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강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믿음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약한 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그 둘 사이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강한 사람들은 구약 시대 유대인들에게 가르쳤던 대로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먹지 아니하는 고기 사이의 구분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믿음에 있어서 강한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더라도 하등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상 같은 것은 없고 다른 신과 같은 존재는 없고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고전 8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교 신전에 가서 고기를 바칠 때 거기서 어떤 다른 신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니 그 고기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고기가 우상에게 구별되는 것도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강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유의 고기를 먹으며 행복해합니다..

 

2. 갈등 심화

반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에 있어서 약하여 이 점을 이해하는데 미심쩍어 고기를 먹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들은 약함으로 그릇된 것을 행하기를 꺼려했고 그래서 그 고기를 먹지 안 했습니다.. 더 강한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의 교훈을 이해했습니다. 막 7:15 “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8-19“7: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7:19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주님을 향해서 율법을 어기는 자 율법을 모독하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율법의 완성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오심과 그분의 완전한 행사가 우리 구원에 있어서 의식 법을 폐하였음을 알 수 없었습니다.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두 타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 위험이 있습니다. 보다 깨우침을 더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따르는 위험은 약한 형제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지적 총명은 거만함을 낳고 덜 지적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적 교만은 무서운 죄입니다. 교회 안에서 거만한 자들은 말합니다. 이 사람은 성경을 전혀 몰라요. 그들이 얻은 것은 그저 약간의 경험뿐이죠. ”이들은 자기들이 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않음 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사도는 인간의 본성을 잘 압니다. 교만이 어떤 것들보다 사람들의 특별한 위험한 죄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 먹는 자는 먹지 않은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항상 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약한 형제가 빠지는 위협은 다릅니다. 바울은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 약한 형제도 항상 남을 판단하는 죄를 저지릅니다. 그들은 자랑할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큰 위험은 더 강한 자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여기 판단하다 의 의미는 더 강한 형제가 모든 종류의 식물들과 고기들을 먹는 것을 약한 형제가 보면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군 만일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런 것들을 먹지 않을 텐데 라고 말하는 위험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강한 형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내가 그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면서 그 강한 향제는 약한 형제를 무시합니다. 그러나 약한 형제에게 있어서 문제는 그 강한 사람이 전혀 그리스도인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시험에 든다는 것입니다. 약한 형제는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 사람에게 최종적인 선고를 내립니다. 저 사람은 진리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열심도 부족하다고 말할 채비를 단단히 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행실의 차원에서 다른 그리스도인을 판단하고 저들은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의심스럽다 “’고 생각하는 경향이 약한 형제가 특별히 빠지는 위험입니다.

 

3. 전환

이 점은 매우 흥미로운 점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그것은 순전히 두려움의 정신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약한 형제의 문제는 항상 두려운 영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사물들에 대하여 명료하지 못하고 두려움이 많은 종류의 사람이며 항상 자기 입장을 방어하고 싶어 하는 데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이 두려움의 정신에 의해서 통제받고 자신을 지킬 필요성에 의해 조정받기 때문에 자연히 원칙과 규례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 결과 이들은 율법주의적인 경향을 가지게 됩니다. 약한 형제는 자신을 위해 여러 가지 규례를 작성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모든 사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세운 그 개념과 패턴을 따라주기 바랍니다. 그는 음식을 먹는 것이 잘못될까 봐오직 안전한 방식은 고기라는 녀석을 잘라내는 거야. 만일 채소만 먹으면 잘못될 것이 없지 라고 말하는 경향성을 가집니다. 그러니 약한 형제의 경향성은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데 연약하기 때문에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다루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15장에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렸습니다. 그 배경은 유대주의 자들로 불리 우는 한 그룹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된 이방인도 유대교 의식 법(할례를 행함 등)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모인 것입니다. 많은 논란이 있었고 그런 후에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성경을 들고 말합니다. 15:8-9“ 15: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15: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여기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마음을 깨끗이 행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베드로는 “10-11” 15: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5: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 자신을 놓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 아 그래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합니다. 이 다른 법칙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공회원은 그것을 순전히 율법주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공회는 하나의 원리를 설정했고 그 원리는 이방인 회심 자가 꼭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2:16-23절에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라는 말을 주목하십시오. 어떤 이들은 엄격한 금욕주의로 돌아갔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을 더 거룩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단들을 이런 유사한 주장을 합니다. 그들은 몸에 관하여 그릇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을 죄악 되고 악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단 사상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에 관련하여 먹고 마시고 무엇을 하느냐를 가르치는 체계는 복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들이 받은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롬 14장에서 사도가 다루고 있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금요일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라는 규칙을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성경에는 없습니다. 로마 가톡릭에서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의무로 부과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규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보고 그리스도의 제자 정신이 모자란다고 평가하다면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1830년에 나타난 절제 운동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설교! 금연을 위한 설교! 극장에 가지 말라는 설교! 텔레비전을 보지 말자라는 설교! 이런 것이 설교의 중심 주제였습니다. 이런 것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설교하는 것은 롬 14장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운동이나 어떤 모임이든지 자신들의 규칙과 규례들을 세울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임에 가입하면 그러한 규례들을 존중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규례들에 찬동하지 않으면 그곳에 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규례들을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암시한다면 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율법주의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규례들을 만드는 순간 율법주의에 들어가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율법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술을 안 먹는 사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거나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상입니다. 이런 자세를 가진 결과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 일리가 없어 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규례들이 어떤 그리스도인들을 평가하는 표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 입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을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입장에서 물러선 셈입니다. 바울이 갈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라고 표현한 바와 같습니다. 물론 바울은 거듭난 사람도 죄에 떨어질 수 있으며 다시 거듭나지 않는 상태로 돌아갔다가 다시 거듭나는 상태로 오고 또다시 떨어진다는 식의 관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지적은 구원이 오로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은혜에 속한다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떠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 그리스도인들이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로 자기 형제를 판단하면 은혜의 입장을 떠난 셈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교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그리스도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4 대단원

우리 모두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율법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입장으로 물러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과민한 이해 또는 남을 판단하는 경향 본질적이지 않는 부차적인 문제들을 진리의 위치로 끌어올리고 그것들을 하나님과 그 사람의 관계에 대한 그의 입장이나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삼는 이런 경향성은 항상 연약함의 표시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율법주의이며 그것이 여러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으로 이끌 때 그것은 매우 심각한 위험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3-4”14: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14: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사도는 결정적인 답을 줍니다. 들어라! 너희는 형제자매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어째서 입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그 형제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남의 하인을 판단할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과민한 이해나 두려움의 정신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롭게 하신 그 자유에 견고히 서있지 못하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