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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수정본"

wordlove 2021. 4. 16. 09:55

1. 본문: 16: 15-27

2. 명제: 그리스도인 마음 안에서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과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3. 제목: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

 

1. 갈등: 그리스도께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계시. 예수님께서 3년 동안 12제자를 가르쳤습니다. 마침내 제자들은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고백을 들으시고 기뻐하시면서 축복하셨습니다. 이때 비로소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세상 인생들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22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 이다. ” 제자가 스승을 향해 주님!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고 꾸짖은 무례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십자가는 가장 흉악한 죄수에게 행하는 가장 무서운 형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인간의 정과 의리로서 그러한 끔찍하고 부끄러운 일이 주님께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의리 있는 베드로의 항변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2. 갈등 심화: 사탄아 물러가라

그러나 일반인의 예상과는 달리 예수님은 베드로의 심정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참으로 끔찍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과 동일시했습니다. 베드로가 사탄일까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분명히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베드로는 지금 사탄과 같은 생각을 품은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결사적으로 방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면 자기 영향력하에 있는 불신자들의 구원 얻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것만큼 사탄에게 소름돋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인간의 정과 의리에 매여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사탄이 인간의 정에 매여 자기주장을 앞세우고 있는 베드로의 생각 속에 들어가서 사탄의 종노릇 하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시며 죄인들이 구원 받을 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인간적인 생각을 하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마귀 짓을 한 결과가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는 베드로의 생각 속에 침투한 사탄을 쫓아내시기 위해 사탄아 물러가라! 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조차 마귀의 종노릇 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따라서 우리는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잘 알아야 신앙생활에서 성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우리 인간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자연인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입니다. 모든 사람은 우리 인간 조상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말미암아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질상 하나님과 원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옛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인간의 부패한 본성인 옛사람을 성경은 육신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또한 죄의 법이라고 부릅니다. 죄의 법이 인간의 마음을 다스립니다. 아무리 죄 안 지으려고 해도 죄가 그 사람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인은 죄의 종인 것입니다.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2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자연인은 본질상 죄를 짓는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는 짓이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는 자 마귀를 따르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들이 맺는 육신의 열매들을 보십시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20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갈 5:21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러니까 이 자연인은 영적으로 마귀의 종입니다. 물론 구원 받지 못한 마음입니다. 거듭나지 않는 마음입니다. 성령이 없는 마음입니다. 어두음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은 30냥 받고 팔아먹고 자살한 가롯 유다가 대표적인 인생입니다. 이 세상은 이런 사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아직 거듭나지 못한 교인이 바로 이들입니다. 둘째는 육신에 속한 마음입니다. 이 사람은 자연인으로 있다가 어느 날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때 성령님이 들어오셔서 그 사람을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을 새 사람 즉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도 여전히 옛사람이 남아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옛사람과 새 사람이 동거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신자의 마음에는 이처럼 두 가지 세력이 존재하면 서로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롬 7:157: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롬 7:167: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롬 7:177: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8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롬 7:207: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1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지라는 선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선을 품었는데 실제로는 악을 행하는 자신을 보고 바울 사도는 너무나 놀란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마음은 원이로되 왜 나는 악을 따라갈까? 위대한 바울 사도가 깨달았습니다. 아하! 내가 비록 예수 믿어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셨지만 옛사람도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죄의 법 즉 육신의 소욕은 옛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따라 살도록 계속 유혹합니다.. 죄짓는 것 재미있자니. 무슨 재미로 사니. 적당히 살아. 등등으로 옛사람을 계속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성령의 소욕은 새 사람을 항해 믿는 사람이 죄를 지을 수는 없다고 내 양심을 책망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 심한 죄의식이 생겨 주춤합니다. 함부로 짓 짓기가 뭐합니다. 죄 짓는 것이 두렵고 부담스럽습니다. 이런 갈등을 일으키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입니다. 아멘! 그러나 죄짓는 것이 재미만 있으면 성령이 없는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에 속한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이 육신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만 아직 믿음이 자라지 못한 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고전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2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느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전 3:3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오믿음이 어리다는 말의 뜻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기 보다는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하면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지만 자신(육신)이 주인 되어 사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 믿어도 새 주인이신 성령님께 자신의 주로 맡기지 아니하고 여전히 육신인 자신이 주인 되어 사는 사람이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도 성령의 소욕을 쫓아 살 때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육신의 소욕을 쫓아 살 때는 마귀의 얼굴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까? 천사의 얼굴 마귀의 얼굴? 오늘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시고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도다라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까? 베드로는 육신의 소욕을 쫓아 살다가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은 어떤 결과를 낳습니까?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인간적으로 보면 아주 고상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때도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겠다는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인간의 정 때문에 주님 안 됩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생각은 인간적으로는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수만 없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조차 합니다.. 그러나 이 베드로의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마귀 종노릇을 한 결과가 된 것입니다. 육신적인 마음은 항상 자기 유익을 먼저 추구합니다. 이기적입니다. 주의 뜻에 무감각합니다. 인간적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어린 신자가 많습니다. 이 어린 신자는 섬김을 받아 믿음이 자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믿음이 어린 신자가 주의 일을 하면 교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주의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처럼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마귀 도구 노릇을 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셋째는 성령 충만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내 안에 오신 주님께 주인의 자리를 양보하고 주인이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신령한 사람입니다, 육신의 일과 성령의 일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는 성숙한 신자입니다. 죄의 법에 순종하는 대신 생명의 성령의 법에 순종합니다. 육신의 소욕을 쫓아 사는 사람이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면 성령의 소욕을 쫓아 사는 사람이 성령에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8: 15 “무릇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사니 자연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5: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4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5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이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 사람이 주님과 교회에 큰 유익을 끼칩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에 크게 쓰임 받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에 많을 때 그 교회는 평안하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상태입니까? 예수님이 없는 불신자의 마음입니까? 예수님을 믿지만 내가 여전히 주인 되어 사는 육신에 속한 마음입니까? 주님께 순종하여 주님 나라 건설에 쓰임 받은 성령에 충만한 사람입니까?

 

3. 전환: 나를 따라오려거든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마 16:24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5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6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바로 성령의 소욕을 쫓아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이기는 길은 단 한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갈 5:16“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면 자동적으로 육신의 소욕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욕을 쫓아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먼저 자신을 먼저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는 어떤 존재입니까? 원죄로 말미암아 죄악 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부인이란 바로 회개하는 삷입니다.. 회개란 주님이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인정하고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가롯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롯 유다와 베드로는 둘 다 예수님을 배신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죄를 깊이 진실하게 회개함으로써 다시 주님의 은혜를 회복하여 더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결코 회개를 모르는 자였습니다. 회개를 모르는 자만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다가 가롯 유다는 양심의 가책으로 결국 자살로 자기 생명을 끊었습니다. 반면 베드로의 진실한 회개는 자기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죄악 된 본성인 육신인 나 자신을 믿으면 안 됩니다. 나를 부인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에서는 먼저 자기주장을 포기하고 자기 고집을 접어야 합니다.. 대신 예수님의 말씀을 주장하고 앞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육신이 죽는 생활입니다. 바울 사도도 날마다 나는 죽노라고 선언합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견해 나의 의지를 포기하고 대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바로 죽는 생활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이 사람이 바로 성령님을 쫓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고통입니다. 사명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축복의 길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고 나신 후 부활의 영광을 덧입은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면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 가면 자연적으로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죄의 소욕을 이기에 하십니다. 그때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4. 대단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주님은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주님이 행한 대로 갚는다는 뜻은 내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신 다는 의미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썩을 죄악의 씨를 계속 심으면 결국 썩어질 열매를 그 인생은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게 됩니다. 성령의 소욕을 쫓아 살면 성령의 열매 맺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속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 아직 안 믿은 분은 마음을 여시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십시오. 육신에 속한 신자는 불순종의 죄를 깊이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순간순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결심하십시오. 나의 생각과 의지를 포기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바로 육신의 소욕을 이기고 성령을 쫓아 사는 삶인 것입니다. 성령의 소욕을 쫓아 사는 사람을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