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롬 14:17
2. 명제: 하나님 나라는 평강이 다스리는 곳이다.
3. 제목: 평강
1. 갈등
로마 교회의 문제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삶의 진정한 성격과 본질을 망각했다는 점을 사도는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가 다스리는 나라임을 지난 시간에 배웠습니다. 하나님 나라 두 번째 본질은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반드시 의로부터 직접 따라옵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의가 먼저고 다음으로 평강 즉 화평이 따라옵니다.. 로마 교회는 다툼 판단 비난의 분위기가 편만했습니다. 사도는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먹고 마시는 것의 문제로 바꾸어 버렸다. 너희가 그러한 일을 했기 때문에 평강을 상실했다. 바로 그것이 너희의 문제 꺼리다.. 믿음 안에서 더 강한 자들이나 더 약한 자들 다 함께 어려움과 분열이 끊임없이 진행되어 그들에게 고통스러웠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두려움의 상태에도 빠지게 되었습니다. 로마 교인들은 병적인 섬세함이라는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먹어야 하는가? 마셔야 하는가? 이 특별한 날짜를 지켜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이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너무 크게 확대되어 너무나 세밀하게 되었고 병적인 지경이 될 지경까지 나아갔습니다. 물론 이것은 모두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평판이나 자신들이 옳은 자의 편에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가진 사실에 기인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들어간 순간 실수할까 봐 두려워지게 됩니다. 그릇된 일을 할까봐 너무 겁을 낸 너머지 항상 안달하며 생각이나 마음속에서 쉼이 없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비평에 비상한 예민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비평이나 오해의 근거들을 남에게 보일까 봐 무서워합니다. 그 결과 평강을 상실합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항상 방어 적이 됩니다. 항상 자신을 설명하려 하고 자신의 의견이 옳음을 입증하려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것이 로마 교인 양편의 섰던 사람들의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간에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어떤 사람도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유의 안식 없고 겁 많고 두려운 상태에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모습이 저절로 드러납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평화롭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평강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평강과 안식에 있어서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보편적으로 그릇된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자기가 만난 어느 누구와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않으려 하며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서 싸우려 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비판적입니다. 보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판적인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확신이 없습니다. 로마 교인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있었고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을 멸시하고 있었으며 약한 자들은 강한 자들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본질적이지 않는 중립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영적 정탐꾼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쉽게 결론을 내리고 그리고 정죄합니다. 이러한 것이 투쟁을 불러오고 분열과 갈등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싸우는 집합체라는 인상을 납깁니다.
2. 갈등 심화
궁극적으로 이 병적인 세심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상세한 것들에 너무 지나치게 사로잡힌 나머지 하나님에 대해서도 두려움의 조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분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또 우리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시며 말하자면 그릇된 일을 할 때 우리의 잘못을 맹렬히 지적하실 준비가 되어 있는 재판장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로마 교인들의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그들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여전히 육신 적인 방식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지만 이 사실이 우리의 사고방식이 옳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교육을 받아야 하고 훈련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원리들을 배워 생각에 적용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사도는 “ 너희는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데로 미끄러져 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없는가? ”그것은 항상 거듭나지 못한 사람 비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고통의 원인인 것입니다. 자아가 중심입니다. 사람은 본질 적으로 자기중심적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자기중심적이었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수고를 싫어했습니다. 약한 사람들도 자기중심적이어서 다른 형제를 보면서 비평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들의 평판이나 의견 자신의 생각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입니다. 세상은 항상 그런 방식으로 출발합니다. “ 내가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저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 나는 이 고기를 먹는 것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 라고 말합니다. 평강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전쟁 상태로 돌입한 것입니다. 각자 자기보호 자기 방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자신에 관해서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와 순 두 개 두 여인 중심으로 편을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분쟁과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권리 자신의 요구 자신의 즐거움 자신의 행복에 집중을 보이고 그것이 다툼과 분쟁의 원천이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와 부모와 자녀 상전과 일꾼 나라와 나라 사이 역시 그러합니다. 항상 ‘나 자신’이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거절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너희는 세상에 있는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 로마 교인들은 하나님 나라 목적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는 것입니까? 어째서 구원이 존재합니까? 답은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눅 2:13-14 “ 눅 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평강의 하나님이 이러한 행동을 취하셨습니다. 그 결과는 “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어째서요. 하나님 나라의 전체 목적은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전환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모반하고 적의를 가진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낙원에 두셨습니다. 낙원에서 그들은 평강의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 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의문을 제기했고 평강을 어지럽게 했으며 그 관계를 깨뜨리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갖고 계신다는 거짓 암시를 함으로써 인간들 속에 적의를 품게 했습니다. 죄는 항상 평강의 결여를 가져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평강의 결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강의 결여 어느 곳에서나 결여를 가져옵니다. 원죄적 모반의 결과로 전 세계는 불안과 전쟁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적대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의로 충만합니다. 어느 곳에서도 평강은 없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화해입니다. 고후 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 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 화목! 속죄! 두 원수를 하나로 묶는 것 한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이런 중립적인 문제들에 처신하는 방식과 이러한 적대감과 질투심과 병적인 불안감을 너희들 속에 산출하는 방식 속에서 하나님 나라 전체 목적과 의도를 부인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겠느냐? 평강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평화로움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평강 즉 화목이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화평입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사람이 그리스도인일 될 때 일어나는 첫 번째 요점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떠나보낸다는 것입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평강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서운 형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적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가지며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재판장이시고 말하자면 아주 세밀하게 자신들을 살피며 정죄하고 벌하시고자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라는 느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듭나지 않는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벌하려고 자기 삶을 상세한 국면들을 정밀하게 살피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는 자녀에 대해 긍정적인 이해를 갖습니다. 만일 자녀가 실패하더라도 분개하는 대신 오직 후회와 슬픔만을 가집니다. 그러나 로마 교인들은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각한 것같이 보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집의 권속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 나라의 첫 번째 목적이 사람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한 상태에 놓는 것임을 망각하였습니다. 구원은 사람들에게 그 안에 있는 평강을 줍니다. 주님께서는 이 내면적인 평강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이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받았습니다. 사도는 빌 4:6-7절에서 ”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 평강을 여러분 가운데 어디서 보여야 합니까?라고?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 너희는 하나님 나라가 먹고 마시는 것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평강이다. 너희는 그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것에 대해 모든 것을 망각하였다. 너희는 쟁투와 걱정과 염려와 자기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사도는 디모데에게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두려워하거나 염려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그 정반대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때 그들에게 일어나는 가장 기이한 일은 ‘내적 평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갈등의 끝이요. 마음에 안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화를 내거나 신경질적이거나 비평적인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안식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전 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이것이 평강의 궁극적인 핵심입니다. 여러분 자신 속에 안식을 가지되 자기 자신도 판단치 아니하는 정도로 안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비평이나 오해에 대한 염려 때문에 부단히 안달하는 일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평화 안에 있는 평강과 그런 다음 ‘다른 사람과 더불어 화평’ 이것이 바로 롬 14:17절에서 다루는 평강에 대한 특별한 주제입니다. 엡 2장에 ”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 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는니라.. “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나 둘로 하나를 만드 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자유인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 담은 사라졌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하나이니라. “그러나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너희는 먹고 마시는 것의 차원에서 이 중간 담을 다시 세우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중간 담을 폐지했다. 엡 2:15-16” 엡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효과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동등하게 죄인들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구주도 하나이다. 동일한 하늘 소망으로 가졌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로마 교인들은 ” 그를 끌어내리고 내가 올라가야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찮은 것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것이 아니다.
4. 대단원
하나님 나라는 평강입니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돼라“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에서 왕노릇하게 하라. 하나님의 평강이 모든 문제를 평정케 하라. 바로 그것입니다.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가? 또 어떤 날을 지키는 것이 옳은가? 여러분은 어떻게 그 문제를 결정합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평강이 조정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결정하게 하라. 하나님의 평강이 어떻게 평정합니까? 소극적으로 우리는 고린도 교인들처럼 하면 안 됩니다. 고전 6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들은 사회 법정에 교인들 사이의 개인적 문제를 들고 갔습니다. 너희는 전체 복음을 부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너희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더냐? 어느 날 너희가 천사들과 세상을 판단하게 될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들 속에서 이런 작은 문제들을 판단할 수 없느냐? 바울은 말합니다. 그와 같이 되지 말라. 너희는 한 몸에 속해 있음을 인식하라. 몸의 여러 부분이 서로 싸우거나 입이 손에게 ‘나는 너 필요 없어’라고 말하거나 더 강한 부분이 약한 부분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우리는 다 하나이다. 우리는 한 몸에 속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 점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있다면 더 이상 먹거나 마시는 문제로 다투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께 대해서 동일한 하나의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 자신들의 견해에 너무 깊은 관심을 갖거나 자기중심적인 사람들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섬겨야 함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영광 받으시고 존귀함을 얻는다면 내 의견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이것이 바울의 호소입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화평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 자녀들의 큰 특성입니다. 그들은 평화를 나누어주는 사람들입니다. 불안과 분쟁을 산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의 왕일뿐만 아니라 평강의 왕이심을 인식함을 뜻합니다. 사 9: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여러분은 평강의 왕에게 속하고 그 안에서 즐거워하고 그 안에서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평강의 왕이신 나의 왕을 따라 평강을 만드는 삶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천국 백성으로 타당 한가라고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