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이론/그리스도 중심적인 네러티브 설교

거짓 자만 감

wordlove 2022. 11. 27. 15:31

1. 본문: 사사기 18:7, 28

2. 명제: 영적 무지의 위험성은 치명적인 파멸로 갈 수 있다.(가능성의 명제)

3. 제목: 거짓 자만감

 

1. 갈등

오늘 읽은 이 두 구절 속에는 BC 1000년경 사사 시대, 시돈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것이 현대인과 너무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대충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시돈에 살던 많은 사람이 자기들끼리 모여, 자기네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하기 위해 시돈을 떠나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세금 문제와 관련된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 그곳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자기들이 사는 성읍을 보호 방어하기 위해 전쟁터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위험 의식 때문에 떠났을지도 모르며, 시돈에는 인구가 너무 많아 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사람들은 시돈을 떠나 자기들끼리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자기들이 원하는 조건에 딱 들어맞는 장소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곳에 정착해 살며 그곳을 라이스라 불렀습니다. 온순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그들은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법도 필요 없을 만큼 굉장히 바르게 살았습니다. 각자 자기 일과 사업에 전념했으며 다른 사람들 일에는 참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7염려 없이 한가하고 평안하게 거했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곧 그들이 그곳을 방어하기 위해, 어떤 법과 외부에서 쳐들어올지도 모를 공격을 고려해서 어떤 대비책도 마련해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정말 무사태평 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그 땅에 들어와서 정탐하고 가든,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국을 등지고 자기들끼리 고립해 살았습니다. 그 땅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그들은 교역조차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자립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그곳에서 이상적이며 목가적인 생활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기업의 땅을 분배받지 못해 거할 곳이 없던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단 지파 사람들이 거할 곳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그들이 사는 곳까지 오게 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들은 계속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다섯 명의 단 지파의 정탐꾼이 이 라이스 땅을 발견하고 그곳 사람들이 사는 생활상을 다 관찰한 다음, 돌아가서 자기네 동료에게 보고합니다. 그러자 육백 명의 남자들이 무기를 들고 그곳으로 올라가 라이스 주민들을 칼로 쳐 죽이고, 그 성읍을 누워서 떡 먹듯 쉽게 불사른 다음 그곳에 정착하여 단이라 불렀습니다. 28"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곳을 점령하기가 얼마나 쉬웠겠습니까. 이것이 라이스에 살던 시돈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이 이야기 자체에 무슨 특별한 가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이야기가 영적인 의미에서 현대를 사는 많은 이들의 인생을 보여 주는 한 폭의 그림과 같기 때문입니다. 라이스에 살던 사람들은 현재 교회 밖에서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유형에 속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선 이런 유형의 사람은 아주 선량해 보이며 전혀 남을 해를 끼칠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유일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 방식으로 인생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고 싶지 않으니, 자기들도 자기네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종교가 개인적인 문제가 되어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 한 종교에 대해서도 전혀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대 법을 어기지 않으며 말썽도 부리지 않습니다. 걱정거리나 염려거리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만사형통입니다. 가정생활도 행복해 보이고 친구들도 있으며 사회생활도 잘해 나갑니다. 지극히 행복한 삶인데 이런 유형의 삶이 어디가 잘못되었다는 걸까요? 그러나 본문은 영적 무지는 치명적인 파멸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무지의 위험성은 무엇인가요?

 

2. 갈등 심화

첫 번째 위험성은 그것이 본질에서 이기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돈인들이 조국 땅을 등지고 라이스에 정착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자기들밖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적당해 보이는 장소를 발견하자 그곳에 정착한 후,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완전히 단절해 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처지야 어떻든 자기만 아무 일 없이 행복하게 살면 된다는 식의 이기심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삶의 방식은 아마 이런 종류의 이기심일 것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자기만 알고 자기 가족과 자기 운명만 생각합니다. 행복과 편안함과 안락이 대부분의 사람들 목적이 되었습니다. 한 인간의 삶이 점점 더, 돈과 소유물에 의해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 아닙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정해 주신 삶의 방식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 이웃을 정말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명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양도해 드림으로써 인생을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어떤 소유물에 대해서도 진짜 소유주가 아니며 다만 청지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또한,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진리와 의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6:33 "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고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떠나 지금의 이 악한 세상에서 인생을 즐기기 위해, 자기들만의 장소에 정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들 마음속에 있는 이기심 때문이요, 안락과 편안함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요, 이제나저제나 오직 자기만 잘되기를 바라는 소원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점점 더 물질주의적이요, 자기중심적으로 변해 가며, 추하고 거칠어지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위험성은 이것이 아주 근시안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첫 부분을 보면 라이스에 거한 이 시돈 사람들이 7한가하고 평안한 삶을 살면서 염려 없이 거했다 는 것이 나옵니다. 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이 행복하고 평온한 것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엇 하나 걱정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혹시 있게 될지도 모를 공격에 대비해 방어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서 있는 기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의 기초는 바로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무개념입니다. 이 시돈 사람들은 한가하고 평안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평안함이 어떤 평안인지 분석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실 어떤 외적(外敵)도 자기들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그들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거짓 평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김정은이가 핵으로 위협하고 미사일을 쏘아 되도 설마 같은 동포에게 어찌하겠어라는 안보 불감증에 빠진 한가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너무 많은 것 같지 않습니까? 라이스 사람들은 심지어는 예측 불허의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조 차 검토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복하고 평안한 이상, 그 외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염려 없이 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어느 날 다섯 명의 남자가 자기들 땅을 정탐하고 갔는데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7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적 아마 이 다섯 사람의 유대의 단 지파에서 보낸 정탐꾼 즉 간첩을 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설사 보았다 해도 그들이 정탐꾼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테니까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이 그리고 철저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한가하고 평안하게 "거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삶에 안주해서 계속 그렇게 살고 싶습니까? 여러분 경내에 들어온 정탐꾼을 보셨습니까? 그들은 그저 와서 둘러보기만 하고 자기네 군대로 돌아갔습니다. 보고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이제 곧 여러분을 향해 진격해 들어올 것입니다. 그들이 조만간 여러분에게 분명히 걸어올 그 싸움에 대비해 어떤 강구책을 마련해 놓으셨습니까? 이제 근시안적인 삶에서 깨어나십시오!

 

3. 전환

마지막 위험성은 이 자멸적인 거짓 자만감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나리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생각 없이 살았을 뿐 아니라 자신들을 방어할 자구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주 경솔했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7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그들은 조국 시돈에서 이탈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의사 소통을 나눌 수 있는 모든 수단들마저 다 끊어버림으로써 자신들을 철저히 고립시켰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얼마나 멋져 보였겠습니까! 그들은 염려 없이 거하며 " " 한가하고 평안히 지냈습니다 걱정거리나 고민거리 하나 없이 인생의 모든 의무와 책임들로부터 해방돼, 자신들을 위해 살고 자기 마음에 흡족한 대로 인생을 즐기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600명의 무장 군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번쩍이는 칼을 들고 쳐들어온 것입니다. 그들이 사는 곳을 정복하고 파괴하기 위해 쳐들어온 것입니다. 이때서야 그들은 자기들이 절망적인 궁지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방어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와서 도와달라고 청할 사람도 전혀 없었습니다. " 우리가 시돈 가까이만 살고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를 그곳에 보낼 수만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 라며 후회했지만, 이제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살해되었고 그들이 살던 성읍마저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멸망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이기심과, 근신안적인 태도, 거짓 자만감은 영적 무지라는 무서운 병을 가지고 왔습니다.. 성경에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말씀에 대하여 현대인들은 콧방귀를 뀌며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까? 죽음 두렵지 않다며 큰소리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간은 영혼과 육체를 가진 존재로 지음 받았기에, 비록 육체가 죽더라도 나라는 존재 즉 영혼은 없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서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영적 무지가 인간의 비극이요 절망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면해도 인생은 죽음의 두려움 앞에 떨고 있습니다. 라이스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모두 죽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자기 조국 시돈과 단절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이 절망에 빠져 있는 이유는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도를 무시하는 인생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꽤 오랫동안은 하나님 없는 삶이 아주 멋져 보일 뿐 아니라 상당히 성공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단절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린 채 여러분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돈 사람처럼 전혀 예상치 못하는 그날이 나를 찾아올 때, 여러분은 누군가를 보내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구원자는 있습니까? 라이스에 거한 시돈 사람들의 경우,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멸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활짝 펼쳐진 영광스러운 복음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포함한 우리는 모두 본질상 라이스에 거한 시돈 사람들과 같은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이며, 거짓 자만감이라는 영적 무지의 잠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났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거절했고, 의사소통 수단들을 모두 끊어 버렸으며, 누구나 분명한 우리 인생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과 대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원수 앞에 무력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편을 마련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토록 극악무도하게 만들어 놓은 이 세상으로 자기 아들을 보내 구원 계획을 마련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그의 아들을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자신에게로 화목하는 그 영광스러운 구속 계획을 세워 그 계획을 실행하셨습니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과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시 46 : 1“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요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 "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4. 대단원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우리의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시고, 우리를 궁극적으로 완전히 구출해 줄 수 있는 구원 계획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구원자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지금 만나고 계십니까? 그분을 아십니까? 그분과 교제하고 있습니까? 그분을 나의 피난처시오, 방패시오, 환난날에 도움으로 삼고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그분의 말씀을 듣고 오늘 당장 회개하고 그분을 따르십시오! 회개는 하나님 없이 사는 삶 자체가 죄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 구원하시려고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순종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죄와 수치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천국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내가 실패한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아 죽으셨다가, 예수 믿는 우리의 믿음을 의롭다 보증하시기 위해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나의 피난 처요, 방패이요, 환난날에 큰 도움이십니다. 그분을 믿어 구원을 얻으십시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분명한 인생의 구원자이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아직 라이스 사람처럼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이며, 거짓 자만감이라는 영적 무지의 잠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여러분의 가까운 이웃들을 빨리 깨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에게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선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