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이론/그리스도 중심적인 네러티브 설교

지친 영혼이 소생하는 길

wordlove 2023. 1. 15. 15:25

1. 본문: 40: 27-31

2. 본문 요약: 불평하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은 자신은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셨다.

3. 본문 주제: 지친 영혼

4. 본문 주제: 지친 영혼이 소생하는 길

5. 명제: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지친 영혼이 소생하는 길이다. (선언적 명제)

6. 목적: 삶에 지친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독수리처럼 비상하는 삶을 사는 비결을 소개하기 위해서

7. 질문 제기: 지친 영혼이 어떻게 소생할까요?

8. 전환 문장: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지친 영혼이 소생하는 길이다. 지친 영혼이 어떻게 소생할까요?

9. 대지

10. 제목: 지친 영혼이 소생하는 길

 

1. 갈등: 불평하는 이스라엘

삶이 피곤하고 어려우면 짜증과 불평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현장입니다. 역경이 찾아오면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은 자신들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오늘 본문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 하다가 나라가 망해 바빌론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70년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노예 생활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들은 이제 지쳤습니다. 자연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마저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들에게 무관심하시다며 절망하며 불평했습니다. 이들의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27절에서“ 야곱 백성아 너희가 어찌하여 불평하느냐? 어찌하여 말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나의 어려움을 모르고 계신다. 내 하나님께서는 나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무시하신다라며 꾸짖고 계십니다. 여기 야곱 백성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때까지 기다리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깊이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어려운 환경만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역경을 만날 때 어떤 자세를 취합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더욱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 시고 계시는구나, 그렇다면 겸손히 잘 배우고 이 역경을 잘 받아들이자. 주님! 나를 더욱 새롭게 만들어 주세요 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왜 나에게 무관심하십니까? 왜요? 왜요? 왜요?라고 불평합니까?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환난을 만날 때 낮추어라. 때가 되면 너를 높이리라. 역경의 때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겸손히 배울 때입니다. 그리고 불평할 때 범하기 쉬운 또 다른 잘못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지 아니하고, 항상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이곳으로 잘못 인도해서 우리가 이 고생을 합니다. 끊임없이 지도자에게 불평 원망하며 돌을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의 원망과 불평에 모세는 너무 지쳐 하나님 차라리 나를 데려가 주세요. 내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라고 한탄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불평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불평하는 주동자 미리 암을 일시적으로 난 센 병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오늘 날 의사들도 불평은 여러 병을 유발하고 잘 낫지를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불평은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아! 이스라엘아! 너희가 왜 불평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불평을 들으시고 묻고 계심을 아십니까?

 

2. 갈등 심화: 너는 알지 못하느냐?

, 야곱아 불평하느냐?? 물으신 하나님은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지 꼭 집어 말씀하셨습니다. 28절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모르는 불신의 문제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 40:28-29“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사 40: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은 이 세상과 우리 인생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인생과는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피곤하니까? 하나님도 피곤해하실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달리 피곤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 여기 명철은 분별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분별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별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앙망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고 불신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믿음 없는 인생들을 보시고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1:2-4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사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사 1:4 슬프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모르고 믿음 없이 죽어가고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 님은 인생들에게 믿음을 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 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서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으면서 생기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잠자고 있는 영혼들의 잠을 깨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듣든지 아니 듣든지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예수 님은 내 말이 곧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다 보면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언제 가는 말씀을 듣고 예수 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496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 봅시다. 열매 차자 익어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전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지으신 참 주인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섬기며 살아야 인간의 맞당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며, 나를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영생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세요. 이렇게 전도는 인간을 살리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3. 전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들에게 준비되어진 축복은 무엇입니까? 40:31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먼저 인간인 나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30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여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아무리 젊고 강건한 청춘의 시절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여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 인생의 연수가 70이며 강건하며 80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안개와 같으며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왜 인간이 이렇게 연약합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떠난 죄로 말미암아 영혼은 참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오히려 거짓 우상을 섬기는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죽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육체는 점점 죽어갑니다. 그 마지막은 자신의 죄를 심판받기 위해 지옥에 떨어져야 합니다. 이런 우리 인생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누릴 수 있도록 회복시키려고 오신 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 앞으로 아무도 올 자가 없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을 누리려면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앙망해야 합니다. 앙망한다는 의미는 기다린다. 소망한다. 믿는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소망해야 합니까? 예수 님을 믿는 자에게 주실 축복을 소망해야 합니다. 예수 님은 그를 소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예수 님은 새 힘 즉 낡아 빠진 옛 힘이 아니고 새 힘 하나님의 힘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하나님 안에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잃고 지쳐버린 인생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삭게 오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조국인 유대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있는 원수 로마 제국의 앞잡이로 소위 세금 거두는 세리 장이 되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창기와 같이 취급 당했습니다. 또한 그는 난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족으로부터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슬픈 처지를 비관하여, 돈을 모으기로 작심하고 부자가 되었지만, 마음에는 늘 허전하고 기쁨이 없고 지쳐있셨습니다. 인생이 왜 사는지 참삶의 목적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 님이 자신의 마을을 찾아오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님을 빙 둘러쌓았기에 난쟁이인 삭개오는 예수 님 얼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그래도 예수 님 한번 만났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이 지나가시는 길가의 뽕나무 위를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나무 밑을 지나가시던 예수 님이 걸음을 멈추시고 나무 위를 쳐다보시고는 삭개오야! 내가 너희 집에 오늘 유하여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아니 예수 님이 어떻게 내 이름을 아셨을까? 삭개오는 너무 놀랍고 기뻐서 예수 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 주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으며 남의 것을 속여 얻는 것이 있으며 4배나 갚겠습니다 라고 고백하자 예수 님은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찾아왔구나,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외면당하며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었던 천하고 천한 삭개오를 먼저 찾아왔습니다. 그의 이름을 이미 아시고 삭개오야!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이 크신 사랑의 주님 앞에 삭개오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자기의 평생 우상이었던 재물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선택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신 것은 성령님의 감동이었음을 믿습니다. 그날 삭개오는 사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새사람 되어, 이제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병들고 지쳐있는 우리 인생들을 살리러 오셨습니다.

 

4. 대단원: 어떻게 주를 앙망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앙망하는 것이 지친 영혼이 소생하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지친 영혼이 어떻게 소생할까요? 무엇보다도 예배를 통해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말씀보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큰 문제라고 예수 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 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그것을 설명하시는데, 인생에는 4가지 종류의 마음 밭이 있다고 하십니다. 먼저 길가와 같은 마음 밭입니다. 이 밭은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 짐승들이 밟아 땅이 너무 딱딱해져 있습니다.. 씨를 뿌려도 길가 밭의 땅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으니 새가 와서 그 씨를 다 주워 먹어버립니다. 이 마음 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 밭이 너무 딱딱하기 때문에 말씀의 씨가 뿌리를 내릴 수가 없으니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온갖 죄, 편견. 선입견, 쓰레기 같은 세상 사상으로 교만해진 이 마음 밭을 성령의 트랙터가 갈아엎도록,, 통곡하며 교만의 죄를 깊이 회개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옥토 밭이 됩니다. 다음은 돌밭과 같은 마음 밭입니다. 이 마음 밭은 얕은 흙이 밑의 돌을 살짝 가리고 있는 밭입니다. 그러나 숨어있는 돌 때문에 씨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결국 햇빛이 쨍쨍 내리 째면 말라죽고 맙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은 처음에는 복음을 듣고 기쁨으로 예수 님을 믿고자 나셨지만, 숨어있는 돌 때문에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여, 어려움이 오면 금방 넘어지고 맙니다. 예수 믿으니 왜 어려움이 많어라며 믿음을 버립니다. 돌밭의 문제는 숨겨진 돌 즉 숨겨진 죄가 문제입니다. 숨겨져 있는 죄를 골라내어 버려야 옥토 밭이 됩니다. 세 번째는 가시밭과 같은 마음 밭입니다. 이 가시밭은 가시가 있어서 밭의 모든 영양분을 빼앗아 먹어버리기 때문에 곡식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가시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입니다. 이 가시밭과 같은 마음은 가시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마음입니다. 세상 염려, 쾌락 사랑, 돈 사랑으로 마음이 꽉 막혀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시를 뽑아야 옥토 밭이 됩니다. 마지막은 옥토 밭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실 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즉 겸손과 인내로 순종하며 듣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 밭은 결국 3060배의 믿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옥토 밭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인내로, 순종하며 들으십시오. 무엇보다 옥토 밭이 되기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주님! 내 마음을 옥토 밭으로 만들어 주세요. 나의 교만, 나의 숨은 죄, 세상 염려, 재리의 유혹을 회개합니다. 십자가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에 예수 님이 오시어 다스리시면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3060배의 성령의 열매를 맺는 옥토 밭이 되어 독수리처럼 힘차게 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기도를 쉬는 죄를 범죄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에 넘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앙망하는 것이 지친 영혼이 소생하는 길입니다. 예수 님을 앙망하는 자는 반드시 새 힘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서 지친 영혼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 이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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