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이론/그리스도 중심적인 네러티브 설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wordlove 2024. 9. 22. 15:52

1. 본문: 13:1-14

2. 명제: 복음은 국가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한다. (선언적 명제)

3. 제목: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1. 갈등: 지난주 말씀을 요약하며 시작하겠습니다.

13장에서 바울은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국민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무엇이고. 그리스도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1절에서 바울은 명료하게 모든 그리스도인은 정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1"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무릇 정부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므로 국민들의 존경과 복종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국가에 주신 역할을 인정하고 5"양심을 따라" 복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국가관인 '왕이나 황제는 신들 가운데 하나이거나 그 지역의 신과 너무나 밀접해서 국가에 신적인 권위가 있다'는 개념에 도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허락하셨지만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것은 반대하셨습니다. 곧 무조건적인 복종에는 반대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529절에서 베드로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에 대해 전하지 말라고 하자 다음과 같은 원칙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베드로와 동료 사도들은 복음 전파를 금지하는 산헤드린 즉 유대인의 최고 법정의 명령에 불복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시민 불복종의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 줍니다. 곧 국가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명하거나 혹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금한다면 국민으로서 불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에 대해 어떤 책임 인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 1, 5절에서 우리는 국가에 복종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6-7절에서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항목인 세금이 포함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정당한 조세 납부를 해야 합니다. 두 번째, 5절에서 양심에 따라 복종합니다. 바울의 근본적인 원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양심과 하나님께 대한 순종 때문에 국가에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우리의 복종의 동기는 국가를 세우신 하나님께 복종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국가가 명령하는 것을 아무런 비판 없이 절대적으로 복종하지는 못합니다. 국가가 우리의 양심에 어긋나는 것을 요구한다면 불복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들과 그 기능들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국가의 소극적인 기능은 범죄를 처벌하는 것입니다. 4"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했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보응하는 자니라" 국가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죄를 처벌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두 번째, 적극적인 국가의 기능은 선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입니다. "국가는 선한 행동과 선을 장려하고 보상하면서 동시에 나쁜 행동과 악은 억제하고 처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3장은 극히 제한된 정부나 매우 강력한 정부, 혹은 자유지상주의나 전체주의의 양 극단을 모두 배제하는 것 같습니다.

 

2. 갈등 심화: 냉철한 조건부의 존중

국가의 기능과 책무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국가를 어떻게 이해하고 국가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 알게 해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기독교 정부일지라도 냉철하게 조건부로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은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입니다. 첫째로, 우리와 다른 입장을 가진 통치자들도 존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교도 왕인 내 종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않으면 렘 27:8"내가 그 민족을 벌하리라"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냉철한 존중이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진 통치자의 행위 때문에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주실 때 그들에게 정의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4"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두려움“ 때문에 분노하거나 더 이상 그의 통치를 받아들일 순 없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쨌든 통치자 본인은 모른다 할지라도 그는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 즉 하나님의 종입니다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뒤엎지는 못합니다. 그의 불신앙과 폭력마저 하나님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습니다. 셋째로, 냉철한 존중은 조건부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심판자이기 때문에 왕과 그의 나라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27:7회개하지 않는다면 왕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이 아니라 비위를 거스르지 않을 만큼만 존중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정부의 기능이 기본적인 치안 유지에 제한된다는 매우 보수주의적 관점을 성경이 지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정부를 마치 구원자로 보는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적인 관점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국가의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대체로 로마서 13장은 정부의 역할에 대해 매우 긍정적입니다. 바울이 7절에서 조세와 관세 납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실상 그리스도인들이 국민으로서 공적인 영역에 널리 참여하기를 권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8-10절로 이어집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야 합니다. 8-10절을 보면 우리가 8절"남이나8절"남이나 “ 9-10"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매우 개인적인 적용으로만 해석하기 쉽습니다. 국가에 대한 내용은 1-7절에서 롬 12:17-21절12:17-21절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과 롬 13:8-10절13:8-10절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사이에 끼어져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요? 먼저 1217-21절과 131-7절 사이의 연관성을 살펴봅시다. 바울은 롬 12:21절"악에지지12:21절"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명령하고 나서 곧바로 사회에 참여하라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국민으로서 국가를 감시하면서 선행 즉 자비와 자신의 행위와 선한 삶을 통해 사회의 악을 이겨야 합니다. 이제 131-7절과 8-10절 사이의 연관성을 알아봅시다. 7절에서 바울은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도"라고 하면서 특별히 국가를 지칭해서 세금에 대해 말합니다. 8절에서는 아무에게도 빚지지 말라고 하면서 그 대상을 국가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웃들로 옮겨 갑니다. 이처럼 바울은 국가뿐 아니라 공적인 영역, 그리고 시민의 생활 전반에 참여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지역과 공동체, 도시에서 선을 행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예레미야는 이러한 집단적인 방식에서 선으로 악을 이긴 성경의 모범적인 예가 됩니다. 그는 바빌론으로 유배된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번영을 추구함으로 악을 이기라고 요구합니다. 예레미야가 바빌론으로 유배된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쓸 무렵 유대인들은 '불결한' 이교도의 도시 생활을 거부한 채 자기들끼리 고립된 지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 도시가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바빌론 사람들의 죄악들을 모른 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유대들은 도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평화와 번영을 도모해야 했습니다. 이교도적인 가치와 타협하라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에게 렘 29:5에서29:5 집을 지어 정착하고, 29:6절에서 사회에 투자하고, 결혼해서 자녀들을 낳아 번성하고,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고, 살고 있는 도시의 평화를 구하고, 도시의 전반적인 조화와 번영을 추구하고, 29:7절에서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이 거주하는 도시의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사랑하고 신뢰함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38-10절에서 바울은 말하는 바도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3. 전환: 사랑에 빚진 자로 살다

7절에 이어 8절에서 전개되는 바울의 명령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칠 세금을 바치고 존경할 권세를 존경하고 아무에게도 빚지지 말고,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떤 빚도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사랑의 빚을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연결시킵니다. 왜냐하면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기 ““ 때문입니다. 9"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그리고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요컨대 하나님의 법은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어떻게 선을 행하고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지침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법은 단순한 지침이 아니라 '사랑의 지침이다." 반대로 10절에서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이웃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법을 성실하게 따르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사실 사랑이란 그저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과 법을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짧은 안목으로 보면 사랑하는 것이 마치 법을 어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진실을 이야기하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까봐 종종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무엇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고 도움이 될지 우리보다 하나님이 더 잘 아신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하는 것'이란 상대방이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게 '위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0절에서 물론 사랑의 핵심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긴 해도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웃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이렇게 해라! 너의 본능이나 지혜가 아니라 율법의 지침들에 따르라.“ 따라서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것은 단지 불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죄는 하 나님의 지혜에 대한 비난이며 거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도시를 섬기면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깨달았듯이 고립과 타협의 양극단 모두를 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비기독교인 사회와는 적당히 거리를 둔 채 그곳이 잘되도록 섬기거나 일하지 않고, 믿는 사람들끼리 게토에 살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유배된 유대인들에게 이교도 도시를 섬기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미 보았듯이 유배된 유대인이었던 다니엘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은 거부했지만 바벨론을 섬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법을 양보함으로 사회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순종함으로써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지 않고 사회에 자신을 순응시키지도 않습니다..

 

4. 대단원: 입체적인 전망을 가져라

이렇게 살기 위해서 11"이 시기"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건설하신 이 세상 국가의 국민이면서 동시에 침노하고 있는 영원한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가져야 할 관점입니다. 이 시기는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습니다."습니다. 이 세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며 영원한 세상이 이제 곧 도래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기대처럼 마지막 심판의 날이 빨리 오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이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덧없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견해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진리 위에, 그리고 하나님, 사랑, 의로움과 같이 사라지지 않을 것들 위에 세워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만이 이 세상의 덧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많은 비 그리스도인들도 삶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이러한 전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11"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는 놀라운 진리를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12"빛의 갑옷을 입게 됩니다 우리는 13절"13절"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할 것이다. “.“ 우리는 늘 여명이 밝아 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아주 가까이 오신 것을 상상하며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참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은 무엇인가?" 14절에서 바울은 이 세상 가운데 천국의 시민으로 살면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말하고 있습니다. 14"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우리는 그리스도로 이미 옷 입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법적으로 "그 안에 "그에게 덮여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문맥에 따르면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예를 들어 턱시도를 입은 남성과 긴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여성은 행동에서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품위 있고 공식적인 모임에 참석하려고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본다면 옷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칫 운동복을 입었을 때처럼 행동한다면 우스꽝스러워 보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마치 그리스도를 입은 것처럼 훈련합시다. 우리는 내가 어떤 분으로 옷 입었는지, 그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무엇을 지불하셨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는 로마서 6장의 가르침과 유사합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자신이 속한 국가와 사회를 대하는 모든 태도 가운데서, 자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항상 기억합시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은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나를 통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일 2:6누구든지 자기 안에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 님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악에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