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시 51:1-2
명제 : 참 회개한 그리스도인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제목 : 죄인의 무력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법을 아는 일입니다. 시 51편은 그 비결을 완벽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불륜과 살인과 기만과 그 밖의 여러 죄를 범했습니다. 그는 많은 죄를 짓고 한동안 꿈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나단 선지자가 비유를 통해서 다윗의 죄악성을 폭로했습니다. 진실을 목도한 다윗은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했습니다.
시편 51편을 위대한 참회시라고 불립니다. 회개의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자신의 영혼 가운데 역사하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기독교적 체험을 그릇된 방식으로 획일화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존 번연이 “넘치는 은혜”라는 책에서 번연이 회개의 문제를 놓고 18개월 동안 고민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지옥의 열린 문턱까지 끌려가 지독한 유황 냄새를 맡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존 번연처럼 특별한 체험이 없다면 자신은 회개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회심 체험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러한 체험을 뭉뚱그려 일반화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제 말은 회심 사건과 회심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거기에는 일정한 공통된 요소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회심과 회심에 따른 과정이 매번 동일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러한 단계가 반드시 정형화된 방식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죄인 다윗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토로하지만 다윗과는 다른 사람 하나를 소개합니다.
찰스 훼슬레입니다. 찰스 훼슬레는 간음죄나 살인죄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을 때 까지 다윗 같은 죄를 범한 적도 없습니다. 찰스 훼슬레는 선하기가 이를 데 없는 사람입니다. 아버지를 이어 목사가 된 경건한 목회자였고 형 존 훼슬레와 더불어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신성 클럽을 결성했습니다. 찰스 훼슬레는 보기에 언제나 선한 삶을 살았으며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과 경건함을 드러내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런 그도 다윗처럼 충격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의롭고 거룩하여라 주님의 이름 나는 부정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 죄와 허물로 가득 차 있구나.” 다윗처럼 끔찍한 죄를 범한 적이 없는 한 총명한 젊은이가 이렇게 참회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죄책감에 대하여 어떤 심리학자들은 인간은 “두 번 때어 나는 인간 twice-born” 유형의 인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들은 자신을 살피는 일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합니다. 반면 또 다른 유형이 있는데 이른바 ”한 번 태어나는 once-born“ 유형의 인간입니다. 이 유형의 인간은 첫 번째 유형의 인간보다 균형 잡혀 있습니다. 게다가 첫 번째 유형과 달리 내성 적이도 음울하지도 않습니다.
다윗, 바울, 웨슬레 형제 등 두 번 때어나는 유형의 사람들은 위대한 회심 체험을 하거나 그럴 확률이 높지만 한번 태어나는 유형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은 자신의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기에 회개의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이 타당한지를 사실에 비추어 검증을 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각양각색의 기질과 성격이 다른 사람들로 혼합되어 나옵니다.
열두 제자를 보십시오. 요한과 베드로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바울은 또 어떻습니까? 교회사를 보십시오.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들의 동일한 진술이 나옵니다. 그것은 자신들은 정결께 하는 샘으로 달려가야만 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인간의 기질과 성격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회개와 구원이 일어 날 때마다 거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는데 만일 여러분의 삶 속에 그런 특징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떼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특징은 회개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직시하고 살핍니다. 하던 일을 중단하고 자신을 살피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만들어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회개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이미 성찰했습니다. 자신의 죄과(transgression). 죄악(iniquity). 죄(sin)를 목도했으며 어떤 일을 했는지를 이미 성찰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범죄 했으며 자신의 본성이 부패할 대로 부패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죄인의 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에 대한 최초의 진실에 눈뜨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자신의 상태와 처지를 살핀 후 절망에 빠져 그에 따른 회개를 하지 않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이요, 내게 은혜를 베 푸소서.”라는 다윗의 고백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벼랑 끝에 서있습니다. 자신의 상태와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을 느낍니다. 다윗은 부유한 왕이었고 그의 왕국 또한 넘치는 재물로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실상을 목도한 후 그 많은 재산 권력 지위가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문제를 소홀히 다룰 성질의 것이 아님을 간파한 다윗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성인들의 전기를 보십시오. 어느 때고 회고했던 사람은 하나같이 어느 시점에서 다윗처럼 특별한 체험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한 적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완전히 오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저는 그런 걱정을 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저는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예배에도 참석했으며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기도 했으며 착한 일을 하 기도 했고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걱정을 제가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죄라고 합니다. 성인(聖人)이라고 일컬음을 받은 사람치고 자신을 사악한 죄인으로 여기지 않았던 사람은 역사상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좀 더 상세하게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요일 1:5“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이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순전한 거룩함 절대적 거룩함이시기에 그분에게는 흠이나 결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간음죄나 살인죄를 저질렀느냐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또한 지금도 사랑하고 있느냐? 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하시며 또한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으뜸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최대의 사역의 최대 목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으며 따라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다니엘이 벨사살 왕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거론했는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단 5:23“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본질적으로 죄란 특정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셔서 하나님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거나 그렇게 하 기를 거부하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회개하는 자마다 언제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의 영혼을 걱정하며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며 갈망합니까? 그분을 영화롭게 하려 애를 씁니까?
세 번째 특징은 용서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 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회개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죄인임을 의식합니다. 그는 이렇게 토로합니다.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을 생각할 때면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기준을 지각할 때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보면 나쁜 줄 알면서도 행한 일들이 있었고 마음과 생각과 상상을 통해 지은 죄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죄인임을 알았다”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알기에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는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라는 다윗의 탄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자신이 부정하다고 생각하기에 죄 씻음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악과 죄 그리고 부정적인 것으로 인해 자신이 더러워졌고 오염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겉과 속이 부정하며 자신이 죄로 얼룩졌음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지은 죄에서 씻음 받고 정결케 되고 깨끗케 되기를 갈망합니다.
네 번째 특징은 자신이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라는 자각과 의식입니다. 다윗의 양심은 그를 고발하고 있으며 그의 죄를 고발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양심이 깨어나면 이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임종 시에 양심이 깨어나는 사람도 있고 죽은 후에 지옥에 가서 양심이 깨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자가 지옥에 갔을 때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거지를 보는 순간 자신의 양심이 깨어났습니다. 양심은 무서운 것입니다. 다윗 역시 양심을 피하려고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어거스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영혼의 불안을 느꼈던 그는 마침내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주님은 주님 자신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안식을 찾기 전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불안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죄의식을 떨쳐 버리기 위해 어거스틴처럼 양심과 정신과 마음의 평안 그리고 안식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습니까? 다윗은 자신이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 봅시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 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 하시나이다“ 다윗은 부자였기 때문에 희생 제물을 드리는 일이라면 조금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네.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이 말뜻을 알아들을 것입니다. 양심이 깨어나면 자신의 노력과 다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은 절대적으로 무력한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힘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여러분의 주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리고 네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하나님께서는 이 두 계명의 준수 여부에 따라 여러분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임을 깨달으십니까?
마지막 특징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만을 애타게 찾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양심의 가책과 회개가 다른 것임을 알게 됩니다. 회개한 적이 없고 양심이 가책만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을 깨달을 때 그 분을 멀리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시점에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의 간섭을 받지 않으며 죄의 확신과 자각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도망치려하며 그분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살피지도 성경을 읽지도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잊을 수만 있으면 뭐든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에도 그분만을 애타게 찾으며 ”하나님 제게 자비를 베 푸 소서“라고 탄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곁에 있기를 원합니다. 회개하는 죄인은 자신이 하나님께 요구할 자격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분에게 뭔가 아뢰기 시작합니다. 그는 하나님만이 자신의 도움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는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하면 죄의 흔적을 없앨 수 있을까?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죄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허물과 죄를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실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그렇게 하실 의향도 있으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제게 자비를 베 푸서서“라고 간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 푸시는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주의 인자를 따라 네게 은혜를 베 푸소서.“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라고 덧붙입니다. 이것이 회심자의 역설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를 지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그 하나님께서 인자하시며 크신 긍휼을 베 푸신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그분의 자비하심에 몸을 맡기며 ”내게 은혜를 베 푸소서.“라고 간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이런 분이심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답은 그가 몸소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끔찍한 죄를 범한 다윗에게 복을 내려 주셨고 은혜를 베 푸셨으며 또한 자비를 나나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나는 거리낌이 없이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예전의 나는 거짓말을 일삼았고 사람을 죽였으며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렸다. 나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지만 거룩하기 이를 데 없는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은 인자하시며 긍휼이 많은 분이시다. 이제 내가 거리낌 없이 그분께 나아가면 그분은 나를 모른 체 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 닫지만 평안을 갖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어떤 분이 ”그렇지만 제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목사님이 아신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맡기라고 권고는 못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두렵거든요.“라고 말합니다. 이런 분에게 당부합니다. 현재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은 여러분과 저를 예수님이 대신 지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독생자에게 전가하셨으며 독생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죄를 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멸하시고 우리에게 거저 용서를 베 푸셨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큰 상처를 입으셨던 그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여셨다는 사실 이 보다 놀라운 소식이 또 있겠습니까?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또한 죄를 판단하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죄의 문제를 다루셔야 했습니다. 죄는 그 정도로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의 선행으로는 죄 값을 치루기에 역부족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셔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그 유일한 해답이 있습니다. ”다른 그 무엇으로도 죄값을 치르기에는 충분치 않았다네 그분만이 천국 문을 여서서 우리를 돌아오라 하시네.“ 하나님께 감사 드립시시다. 그분만이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고 영원한 구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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