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이론/그리스도 중심적인 강해 설교

신령한 너희는

wordlove 2023. 10. 8. 15:09

1. 본문: 5:25-6:5

2. 본문 요약: 성령 충만은 사람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타난다.

3. 주제: 성령 충만

4. 테마: 관계로 드러난 성령 충만

5. 명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사람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타난다. (선언적 명제)

6. 설교 목적: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만났을 때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소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7. 질문 제기: 어려움을 만난 사람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8. 전환문장: 성령 충만한 사람은 사람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타난다. 어려움을 만난 사람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9. 대지

10. 제목: 신령한 너희는/ 관계로 드러난 성령 충만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니, 이제 성령에 의해 살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25절에서 성령과 보조를 맞추어 살라고 권면합니다. 성령으로부터 모든 힘을 얻어라. 성령이 너희 삶과 행위의 모든 국면을 인도하게 하라. 이러한 삶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의해 살고 육에 따라 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26절에서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은 헛된 영광과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서로를 자극하며 시기하며 헛된 영광을 취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에서 죄를 범한 사람을 만났을 때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바울 사도의 권면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사람과의 바른 관계에서 그 참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교회에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만났을 때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소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교회에서 어려움을 만난 사람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먼저, 바로 잡아야 합니다.

1절을 다 함께 봉독 합시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죄를 범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여기 죄를 범한 일의 의미는 넘어졌다. 도덕적인 실수를 했다는 뜻입니다.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미끄러운 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자를 바로 잡아라는 뜻은 회복시키다 찢어진 그물을 수선하다는 뜻입니다. 깨어진 뼈를 수술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 사람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 신령한 너희는영적인 사람으로 성령충만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다른 사람의 죄를 쉽게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보통 어떤 반응을 할까요? 3가지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1) 정죄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동정심이 없습니다. 속으로 신난다. 나는 저 사람보다 나아. 칭찬받고 싶은 교만이 있습니다. (2) 냉담합니다. 나는 관심이 없어. 교만입니다. (3) 소심합니다. 상처 주고 싶지 않다. 자기 영광을 구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한 자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죄를 지은 그 사람을 회복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를 바로 잡을 때 태도가 아주 중요합니다. 두 가지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온유한 심령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고 그를 다치지 않도록 도우십시오. 경멸하는 자세를 가지지 마십시오. 무릎 꿇게 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정죄가 아니라 치유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자신도 그러한 죄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예수 님은 눅 22:40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권면하십니다. 자신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고전 10:12“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것이 성령 충만한 자의 태도라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사탄은 수천 가지 방법으로 믿는 자를 유혹합니다. 형제가 넘어졌다면 마귀의 희생물이 되었음을 고려하십시오. 동정심과 용서로 다아가야 합니다. 실수한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전하러 간다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세는 적합지 않습니다. 27:4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를 못 박아 놓고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 모두가 주님을 희롱했습니다. 육체의 일인 교만의 극치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에게 횟수를 세는 원리는 더 이상 합당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니 용서하면 됩니까? 물었을 때 마 18:22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무한히 용서하라는 의미입니다. 왜요, 그리스도인은 주님으로부터 무한히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고 팀 켈러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구원은 특별 은혜이지만 그 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일반 은혜입니다. 우리의 성품은 일반 은총에 속합니다. 젊은 시절 팀 켈러 목사님이 섬기든 교회를 아주 어렵게 하는 가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나이 많은 목사님에게 그 가정에 대해 푸념을 했습니다. 힘들어 죽겠습니다. 그러자 노 목사님이 이런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반 은총 가운데 좋은 가정에서 자라 성품이 일반 은총지수 3에서 시작한 교인이 있었는데 예수 믿고 5년 지나자 좀 변화되어 3.5까지 자랐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불평하는 가정은 두 부부는 참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군요. 그러다가 예수를 믿어 5년이 지난 지금 일반 은총의 성품 지수는 1.5 수준까지 자랐습니다. 1.53.5는 상당한 수준 차이가 나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5년이 지난 사이에 한 분은 0.5 수준 성장했고 어려운 가정은 1.5 수준까지 자랐습니다. 3배 정도 변화되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도 부족합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생각하고 이것을 알면 누구에게나 온유하게 대하게 될 것입니다. 실수한 사람을 보고, 나도 넘어질 수도 있는 연약한 자임을 안다면 온유한 심령으로 실수한 그를 치유하려고 다아갈 것입니다. 어떻게 어려움을 만난 사람에게 처신해야 할까요?

 

둘째, 서로 짐을 져야 합니다.

2절을 다 함께 봉독 합시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교회에서 넘어진 사람을 보게 되면 공동으로 짐을 지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 즉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2절에서 서로를 강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은 상호 관계를 중시합니다. 누구도 혼자 설 수는 없습니다. 힘든 고통을 공동 사랑으로 지고 가야 합니다. 넘어진 자가 연약함을 극복하도록 서로 도우십시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리스도의 법이란 사랑의 법입니다.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그 사람을 서로 도움으로써 하나님의 법을 성취해야 합니다. 성령은 은혜를 받을수록 더 약한 형제를 섬기도록 인도합니다. 주님이 어떻게 본을 보여 주셨나요?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든 한 강도가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십자가 지신 고통 가운데서도 관대하신 주님을 보십시오. 1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38년 동안 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던 병자를 고치시고 그를 향해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공의와 온유함으로 타이러시는 넓고 지혜로우신 주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예수 님의 비유에서 집 나간 탕자나 집안의 탕자 모두를 무조건적으로 받아주시는 너그러우신 아버지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조건 없는 사랑으로 우리가 오늘 여기 서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공동체를 깨뜨리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3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교만은 자기 영광을 구하는 어리석은 일이며,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교만이 공동체를 깨뜨립니다. 고후 3: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물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자기 비하는 우리의 용기를 잊어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반대로 바울 사도는 빌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선포합니다. 병적인 자기 비하는 은사 주시는 하나님께 부당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 안에 있는 자기 확신을 나무랍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것도 지나친 자기 확신 자기가 남보다 잘났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칼빈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자신의 등에 매달려 있는 지갑은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자신의 약점을 안다면 남을 쉽게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도 다른 형제의 자비가 필요함을 아는 연약한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면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욕과 엄격함은 다른 형제를 경멸하는 교만에서 나옵니다. 교만을 버리고 온유함으로 대하십시오.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모인 어느 마을에서 애꾸눈 가진 사람이 자신은 정상적인 눈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흑인 마을에서 거므스리한 한 사람이 자신이 백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사랑의 법을 즐거워하기를 기대합니다. 어려움 당한 사람에게 친절함으로 긍휼 하심으로 이웃을 섬기면 그리스도의 법 사랑의 법을 성취하게 됩니다.

 

마지막은, 각자 자기의 짐을 져야 합니다.

5절을 다 함께 봉독 합시다.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여기서 짐은 군인들이 메고 가는 배낭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각자가 져야 할 책임이요 의무입니다. 성경은 각자는 자기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20:13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2절에서의 넘어진 이웃의 짐은 공동으로 저야 하지만, 책임은 각자가 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행위를 따라 심판하십니다. 여기에 우리 인간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나 자신의 모든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면 과연 나는 주님 앞에 설 수가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합격선에 미치지 못함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위대한 복음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우리 인간의 절망을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나는 주님이 요구하시는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이루지 못한 죄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나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의 요구를 100% 다 순종하시어 하나님의 의를 만족 시켜셨습니다.. 그리고 나 대신 죄의 값을 치르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죽음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사 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하나님이요 그리스도로 즉 구세주로 믿는 모든 자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주십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 대신 저주받으셨기 때문에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 놀라운 주님이 주신 은혜를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언자이십니다. 대언자는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으실 때 나를 변호하실 변호사란 의미입니다. 요일 2:1-2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2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하나님 앞에서 각자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으실 때, 여러분운, 여러분을 변호하실 변호사가 계십니까?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언자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변호사가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어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랐습니까? 감사하지 않나요. 감동이 되지 않나요. 또 예수님을 믿을 때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도우시며, 복음을 전파할 권능을 주십니다. 이제부터 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 의지하여 당당하게 성령충만을 구하십시오. 성령충만은 예수 믿는 모든 신자가 누릴 수 있도록 주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축복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성령으로 넘어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십시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어려움 당한 형제자매를 온유함으로 치료하고, 서로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법 사랑의 법을 이루시는 여러분의 삶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