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요일 5:16-17
2. 명제: 영생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넘어진 형제를 위해 기도하여 생명을 얻도록 도와야 합니다. (명령적 명제)
3. 제목: 형제를 위한 기도
지난주 읽은 요일 5:13-15절은 본 서신인 요일서에 대한 일종의 추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 이유는 요한이 수신자(초대 교회 교인)들의 상태와 행복과 안녕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신자들의 고된 삶을 익히 알고 있었던 요한은 그들을 염려했고 그래서 추신을 덧붙였습니다. 추신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영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지난 주에는 영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첫 번째 기도 원칙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가 구원과 영생에 관한 확신이라는 이 위대한 교리로부터 이끌어 내는 두 번째 기도 원칙과 마주하게 됩니다. 두 번째 기도 원칙은 서로를 위한 기도 곧 형제들을 위한 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16절"누구든지 형세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와 올바른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그리스도인 형제들, 곧 같은 믿음의 가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음과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속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눕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며 교회의 구성원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요 식구인 것입니다. 그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 위대한 구원의 은혜들을 온전히 누리며 하나님과 더불어 천국으로 함께 행군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약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요한은 16절에서“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에 빠진 형제를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면 그에게 생명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교회 지체 중 어떤 사람이 범죄 하는 것을 보거든 기도하라. 그는 형제이지 이방인이 아닙니다. 너희가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다른 형제가 동일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면 너희는 형제들임에 분명합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형제 자매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같은 아버지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동일한 하나님의 성품을 공유한 자들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친밀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형제 자매로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가족 관계입니다. 교회의 구성원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 중 누구든지 죄 가운데 빠지면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복음의 평판이 나빠지기 때문일 뿐 아니라, 그 형제를 위한 사랑 그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그에게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냉담하게 되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왜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까? 그로 하여금 자신이 행한 대로 거두게 하자."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 6;2절"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우리를 돌보셨습니다. 따라서 죄에 빠진 형제와 자매를 보면, 우리는 그와 그의 안녕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은 죄에 빠진 형제와 관련해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그를 위해 간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구하다'는 단어는 매우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구하라'는 단어는 사실상 '탄원하다'는 뜻이며, 우리가 간절히 기도드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어떤 형제가 절망적 곤경이나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요한은 “너희 형제를 위해 간청하라 간절하고 열렬하게 기도하라. 그 형제가 회복될 때까지 멈추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교회 생활에 관한 아름다운 정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이 생각하는 교회의 개념입니다. 만일 형제가 넘어지면 우리 자신도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하며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갈 6:1-5“6:1-5 “각각 자기의 짐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 신약성경은 하나 됨,, 서로를 향한 큰 관심과 기도를 통한 위대한 친교 등으로 가득합니다. 이제 두 번째 기도의 원칙으로 방향을 돌려 보겠습니다. 영생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죄에 넘어진 형제를 위해 기도하여 생명을 얻도록 도와야 합니다. 영생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죄에 넘어진 형제를 위하여 생명을 얻도록 도울 수 있는 기도 원칙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 기도 원칙은 죄의 특성에 관해 명확한 견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16-17절"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여기에는 죄의 특성에 관해 우리가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모든'불의가 죄입니다. 의롭지 않은 것은 모두 죄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삶의 방식에 따라 살지 않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여기에서 요한은 다시 한번 더 그토록 자주 경고해 왔던 완전주의와 무 율법주의라는 그릇된 교훈들에 대항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러한 언급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는다. 나는 죄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요한은 완전주의 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불의가 죄이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말라. 그는 너희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그런가 하면 무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죄를 짓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가 어떠하든지 상관없다고 즉 죄를 범하는 것은 육신일 뿐 자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 모든 불의가 죄이다. 우리 자신이 무가치하거나 결함이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이 다름 아니라 죄이다. 너희가 그것을 연약함이나 경솔함 등으로 지칭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죄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모든 것은 죄이다."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요한은 요일 3장과 4장에서 죄란 바로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십계명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하며, 둘째는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율법에 비추어 보아 부족한 모든 것은 죄입니다. 죄에 관한 두 번째 진술은 이렇습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중단시키는 것입니다. 16절"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한 형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중단했음에 분명합니다. 요한은 그런 사람을 위해 기도한 결과 그에게 단절된 이 생명을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죄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중단시킨다는 것을 압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교류가 중단되지 않는 삶입니다. 요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죄를 범하는 순간에, 당분간 하나님의 얼굴이 사라지며 그분과의 교제가 중단됩니다. 요일 1:5-6절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죄의 결과는 항상 그러합니다. 죄는 이처럼 복된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귐을 중단시키며 당분간 우리는 어둡고 생기가 없고 냉담한 삶을 삽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경험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죄 가운데 빠질 때, 무엇보다도 근심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범한 죄가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교제가 중단되었으며 하나님의 얼굴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가 하는 일입니다. 죄는 영원한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주님과 여러분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죄는 여러분에게서 웃음과 하나님의 얼굴을 앗아가 버릴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항상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미 요일 2장에서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초대교회에는 교회에 소속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지만 나가 버린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떠났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와 관련된 가르침을 부인했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요한은 여기에서 성령을 거스르는 신성 모독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먼저 마 12:31-32절에”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 12:32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와“와 다음에 히6:4-6절에서”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히 6:5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히 6:6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 앞에서의 두 구절은 성령을 거스리는 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진정한 성품과 구주 되심에 관한 성령의 가르침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성품인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죄란 요일 5:16절에서"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분명 이는 불신자들 가운데서는 나타날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불신자들은 고의적이거나 의도적이지 않으며, 그들은 단지 영적인 눈이 멀고 영적으로 무지할 뿐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나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을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무지한 불신자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범한자는 아닙니다. 이런 불신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서 생명을 얻도록 도와야 합니다. 반면 성령을 거스르는 죄 즉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란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히브리서 6장에 묘사된 사람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처음 교회 안에 있었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지만 마침내 복음에 대해 등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비방하며 "예수는 어쩌면 그는 사기꾼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수준까지 간 후에 마침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성령의 증언을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요일 5장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요한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증언하시되 '물 즉 세례'와 '피 즉 십자가 죽음'과'와 '성령'을 통해 증거 하셨다고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에 관한 성령의 증거와 증언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이는 분명히 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런 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경멸하고 조롱하며 자만심에 빠져 그분을 비방하며 막 3:22절"이 사람은 마귀이며, 그가 하는 일은 바알세불을 통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거만하며 자만심과 자기 확신에 빠져 있습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범하는 사람들은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며 ‘진리'를 경멸합니다. 요한은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범한 사람들은 교회를 떠났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이단에 속한 자들이 바로 그런 자들입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비방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거스리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리스도가 구주가 아니라고 하며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분의 피가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는, 그리스도를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위해서 요한은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 즉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한자는 누구를 말합니까? 16절"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의심과 악한 생각들에 시달리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범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주님을 시험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 4장에서"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만일이라고 했습니다. 또 의심과 악한 생각들에 대해 염려하고 그것들을 미워한다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짓지 않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너무도 무가치하다고 느끼며 자신이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다는 사실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범한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고자 노력하며 그분께 발견되기를 원하는 자들, 기도하며, 복음 듣기를 즐거워하는 자들 모두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이 지은 죄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죄악 된 생각을 미워하는 사람들, 그것으로 고통당하며 그것들을 제거하기를 바라는 사람들, 자신의 삶과 사랑이 불완전함으로 근심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거스르는 죄 혹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와 거리가 멀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요한 사도는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한 자를 볼 때는 사랑과 동정의 마음으로 관심과 간곡한 심정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함을 권면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알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형제자매는 회복시킬 수 있다는 복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가 그들을 온전한 교제의 삶으로 회복시키는 수단이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천국을 향한 이 영광스러운 행진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영생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넘어진 형제를 위해 기도하여 생명을 얻도록 도와야 합니다. 오늘부터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 그리고 믿음에서 잠시 넘어진 자들을 위해 서로 기도하여 생명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영생을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져야 할 두 번째 기도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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