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이론/그리스도 중심적인 강해 설교

그리스도인의 인생관

wordlove 2024. 9. 1. 15:09

1. 본문: 요일 5:19

2. 명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속하고 이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속함을 알아야 한다. ( 명령적 명제)

3. 제목: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세상에 속한 삶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인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의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 모든 사실 때문에 그가 다시는 악한 자의 손아귀에 붙들릴 수 없다는 언급으로 18절 마무리를 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은 중요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씀입니다. 19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 그것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성경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 여러 서신서에는 이 세상에 대해 매우 명확한 견해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주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보면, 주님은 자기 백성을 세상에 속한 자들로부터 구분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과 옛 시대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히브리서 11장을 보아도 그들은 분명히 또 다른 나라를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따로 구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순례자와 나그네 그리고 일시적인 체류자 등으로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후 6:1 "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고후6:14절"고후 6:14절"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것은 서신 전체를 통해 두루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우리가 이 구절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관을 결정합니다. 개인적 측면에서 볼 때, 나 자신의 행위와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구절에 대한 나의 태도입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란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나은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19"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신약성경 어디에나 이 점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은 완전히 다릅니다. 많은 사람이 이 구절에 대해 혼란스러워합니다. 이 구절과 관련해 마음에 근심이나 혼란이 생긴다면. 그것은 우리의 세상관이나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에서 또는 둘 모두에서 무엇인가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교회의 현재 상태에 대한 책임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구별이 지속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세상 사이의 경계선은 점점 더 불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연약하고 불행하며 세상에 대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은 사실상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 중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가? 내가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특별히 오늘날의 비극은 어리석게도 교회가 세상의 관심을 끌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세상에 순응하려 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스도인이 다르기를 기대합니다. 신약성경도 이 점을 강조했습니다. 교회가 제상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는 것은 신약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일 뿐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세상관과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19절에서 "온 세상은 악한 자안에 처했다"고 했습니다. 요한이 말한 세상은 세상의 물질적 기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세상이라는 말이 항상 하나님 없이 세워진 세상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배제한 인간의 관점과 정신 상태로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지배를 받는 삶을 의미합니다. 온 세상이란 단지 죄의 수렁 속에 거하는 자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배제시키는 모든 삶을 의미합니다. 오늘 밀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속하고 이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속함을 알아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은 어떻해야 할까요?

 

먼저, 세상 사람들의 인생관부터 알아봅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이 독특함을 대조적으로 강조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은 생물학적 인생관을 취합니다. 세상이 왜 그토록 문제와 불행에 싸여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순전히 생물학적으로 대답합니다. 그들은 단지 '진보와 발전의 한 과정이요 고통의 증가는 항상 성장을 동반한다고 대답합니다. 또한 어느 정도의 혼란과 반발도 없이 진보와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유년과 청년 시절에는 종종 긴장과 위기가 따르지만 그것은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과정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세상의 문제와 불행을 순전히 경제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세기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의 힘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자본과 노동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음식의 문제이며 인간의 근본욕구인 경제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세상의 문제와 불행을 정치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게 진정한 문제는 그가 정치적 동물이라는 데 있으며, 공동생활은 항시 특정한 조직체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매우 잘 해왔지만 분명히 그것을 완성시키지는 못했다. 어떤 나라들은 진보가 늦고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 그들은 계발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인내할 것을 권합니다. 사람이 정치적으로 연단을 많이 받을수록 자신의 문제를 더 잘 해결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 모든 것이 지성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달리 말해 세상에서 발생하는 어려움과 인류의 모든 불해은 사람들이 자신의 두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말합니다. 사람들은 너무도 어리석은 나머지 짐승처럼 살아갑니다. 그들은 충분히 계발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지식과 교육을 제공하기만 하면 개인의 문제와 민족의 문제, 국제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를 확신시킵니다. 마지막 관점은 도덕적 관점이라고 지칭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입장을 취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생기는 삶의 문제는 생물학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지성적인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의 문제는 도덕적인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선과 악에 대한 개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개념을 통해 어떤 사람을 생각하기보다 물질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도덕적 문제가 우리에게 진정한 문제점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것들이 세상 사람들의 인생관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은 어떻해야 할까요?

 

다음은,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의 관점은 영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도덕적 관점과도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것은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이 입장에 의하면 세상과 관련된 문제는 그것이 단지 어떠한 특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는 단지 세상이 현상태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이 세상에 속한 삶은 전적으로 또 절대적으로 악한 세력에 의해, '악한 자' 라고 묘사된 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와 악에 대한 성경적 교리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누구11:21절에서 악한 자를 자신의 재물과 집을 지키는 "무장한 강한 자로 비유합니다. 주님은 요 12;31절에서 악한 자를 "이 세상의 임금"에" 비유합니다. 악한 자를 에베소서 2:2에서 바울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언급했습니다. 고후4:4고후 4:4절에서 악한 자를 "이 세상의 신"으로 12:10"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사단의 존재를 믿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인생관은 영적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 세상의 삶을 지배하는 악한 존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을 완전하게 지으셨고 세상도 완전하게 만드셨습니다. 그것을 낙원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악한 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원래 지혜와 특출한 영광으로 지음 받은 천사 장 루시퍼로 하나님에 대항해 반역하고 교만하여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께 맞섰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권능을 공격했습니다. 루시퍼라고 불렸던 천사장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 타락하여 마귀 혹은 사탄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가 이 땅에 들어와 우리 인간을 유혹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의 말을 듣고 타락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것이 바로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사탄의 꼬임에 귀를 기울였을 때,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세상을 사탄의 지배 아래 넘겨주었습니다. 온 세상이 그 악한 자의 세력 안에 놓여 있습니다. 악한 자는 세상을 움켜쥐고 있으며, 그 모든 생각과 그 모든 행위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관점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불행과 모든 문제들의 원인을 잘 설명해 줍니다.. 그것은 생물학적이나 경제적 관점이나 정치적 관점도 아니라, 문제가 우리의 지적 결함이나 교양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며, 도덕적 수준을 향해 매진하지 않기 때문도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와 세상에 속한 삶이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신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신약성경을 읽을 때면 항상 이런 개념과 마주치게 됩니다. 엡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큰 싸움에 대해 읽어 보십시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의 모든 가르침에 의하면 세상이 현재 상태로 전락한 것은 마귀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이 이를 공박할 뿐만 아니라 싫어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분명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것은 대부분 2천 년 전에 기록된 책에서나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일 뿐이며, 원시 사회와 정신 상태를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어쩌면 150년 전의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믿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그와 같은 가르침을 지금까지 계속 전할 수 있는가? 이 세상이 얼마나 진보되었는지 보라. 이 세상에서 고통과 잔인함이 얼마나 줄었는지 보라.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나이와 질병을 보라. 우리의 눈부신 과학의 진보와 산업의 발전을 보라. 당신은 우리에게 이 세상이 악한 자의 지배와 마귀의 수중에 있다고 믿을 것을 요청하는가?" 오늘날 사람이 진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오늘날처럼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의 이기심이 표출된 적이 있습니까? 성경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이라고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딤후 3:1-5딤후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딤후 3:2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딤후 3:4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처럼“ 오늘날 삶에 대한 현대인들의 모습은 가장 마귀적인 자기 중심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왜 이 세상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의 관점은 이 세상이 ’’ 악한 자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영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은 어떻해야 할까요?

 

끝으로,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은 하나님을 향한 세상의 태도 속에서 엿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귀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이며, 그의 주된 관심은 세상이 그분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한 마귀는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교양을 많이 쌓고도 경건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극적 시금석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이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오늘 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심하게 악한 자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최고로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비웃으며, 초자연적이고 이적적인 것을 조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지 않고, 십자가와 사람의 죄를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적대감을 표하는 등과 같은 일에 가장 앞장섭니다. 이것은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한 사실을 너무도 잘 입증해 줍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인생관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도 불행한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든 문제를 다른 사람들 탓으로 돌리며 서로를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든 불행의 근원이 자기 내면 속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는 서로 싸우며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작은 신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상태입니다. 4:1"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사탄의 손아귀 안에 있는 자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고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이런 사실을 시사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자신의 운명을 망쳐 놓고 있습니다. 그들이 현재와 같은 모습과 행동을 하며 세상의 현상태가 이런 것은 사탄이 그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며, 그들을 축복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라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인생은 심한 불행을 느끼고 수많은 문제에 압도당하며,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행복과 구원을 거부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 삶에 대한 성경적 관점입니다. 문제는 '진화의 지연'이 아닙니다.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도 아닙니다. 단순한 교육과 지식, 교양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가 보다 높은 도덕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거나 더욱 정직하고 친절하라는 권면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영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돌이켜야 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강력한 대적의 손아귀 안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대적은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억누름으로써 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분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으며, 그분만이 사탄을 물리치실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벧전 5:8절에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그러므로 이렇게 간구하십시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며,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속함을 아는 영적 통찰력을 더욱더 깊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지혜롭게 분별해 피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말씀으로 싸우게 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의 이웃들을 세상에서 건져 내는 일과,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그들에게 알려 주는 복음 전도에, 더룩 더 힘을 기울일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깨어 기도하게 해 주옵소서 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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