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요 18:36
2. 명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선언적 명제)
3. 제목: 교회와 정치
1 갈등. 하나님은 좌파, 우파 어느 쪽일까?
여러분,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에 한 병사가 링컨 대통령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대통령님,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신지 궁금합니다.’ 그러자 링컨 대통령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지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우리도 좌파냐, 우파냐를 따지기 전에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정치적 이념의 이분법을 다루지 않고, 대신 정의, 자비, 공의와 같은 영원한 가치 기준을 제시합니다. 독재 정부에 대한 교회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독재나 폭정에 맞서, 하나님의 공의와 인권을 옹호할 것을 요구합니다. 시편 82:3–4“:3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시 82:482: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공산주의에 대한 성경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현대적 정치 체제인 ‘공산주의’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나, 초대 교회의 공동체적 삶(행 2:44–45“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을 통해 상호 나눔과 사랑의 본을 보이지만, 강제적 재분배나 국가주의와는 구분되는 자발적 연대 즉 사랑을 통한 자발 적 섬김을 강조합니다.
2. 갈등 심화: 구약 시대와 종교 개혁 주의자들은 교회와 정부에 대한 어떤 관점을 가르칩니까? 비록 구약에는 ‘교회’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국가의 통합 질서를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 전체를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며, 정치·사회·종교 모든 영역에 주권을 행사하셨습니다. 출 19절:5–6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하여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온 땅의 소유가 될 것이며… 너희는 내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신 17:14–20절에서 왕이 다스릴 때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도록 명령하며, 세속 권력도 하나님 뜻 아래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사 9:6–7절에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실 영원하고 공의로운 통치의 모형을 암시합니다. 사도 시대 이후, 초대 교부들의 견해는 어떡했습니까?? 교회와 세상 정부의 긴장과 분리를 주장했습니다.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세상 정부를 ‘필요한 질서 유지 도구’로 보면서도, 교회의 궁극적 권위는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저서 “하느님의 도성”에서 이 ‘세상 도성’과 ‘하느님의 도성’을 대비하여, 세상 정부는 타락한 인간의 죄를 제재하는 한편,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는 필연적 질서 유지 수단이지만, 참된 평화는 하나님 안에서만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테르툴리안테르툴리안은 저서 “변증론” 등에서 로마 세속 권력의 도덕적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기독교 공동체는 세속 정치에 함몰되지 말아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의 정체성과 신앙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의 분리 원칙을 강조하였습니다. 종교개혁 시대 개혁자들의 세상 정부에 대한 이해는 무엇입니까? 종교개혁자들은 ‘세속 정부’가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의 일부임을 인정하면서도, 교회와의 관계 및 정부의 한계를 명확히 구분하려 했습니다. 칼빈는 “기독교 강요”“기독교강요”에서 정부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적 질서”로 이해하며, 정부의 주요 목적이 죄를 제재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세속 권력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라는 관점을 통해, 정부의 권위가 신적 질서 아래에서만 정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며, “인간 사회의 모든 권위는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루터는 저서: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두 왕국론’을 통해, 영적 왕국과 세속 왕국을 분리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는 “세상 정부는 검의 통치, 교회는 복음의 통치”라고 말하며, 기독교인은 두 영역에 모두 속하지만 궁극적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아브람 카이퍼는 저서 “칼빈주의 강의”에서 “모든 생활 영역은 그 자체의 자율성과 독특한 규범을 가지나, 전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한 평방 인치도 그리스도의 주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는 말로, 정치, 예술,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강조하며, 교회와 국가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주장했습니다. 20세기 신학자 바르트는 저서 “교의학” 등에서 세상 정부를 “필요한 사회적 제도”로 인정하면서도, 국가 권력이 하나님보다 우위에 서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국가는 결코 궁극적인 권위가 될 수 없으며, 모든 인간 제도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라고다” 주장하며, 정치 이념이 하나님 말씀에 복종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3. 전환: 예수님은 세상 정부를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로마 제국과의 관계에 대해 예수님은 당대 정치권력(로마 제국)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시면서도,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마 22:21절에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요 18:36절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이 말씀에 대하여 칼빈의 해석은 이러합니다.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속적인 권력과 구별되는 영적인 왕국임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세상 속에 존재하지만, 세속적인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기보다는 영적인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정치적 분열 속에서도 중립을 지키며, 신앙과 도덕적 가르침을 통해 사회의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복음의 순수성과 교회의 거룩 성을 강조하며, 교회가 세속적인 이념이나 정치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세상과 구별된 영적인 공동체로서, 오직 복음 전파와 성도들의 영적 성숙에 집중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중립을 유지하며, 복음을 통해 사회의 치유와 화합을 이루는 데 힘써야 합니다. 팀 켈러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며, 교회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성경적인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도, 사회의 아픔과 갈등에 적극적으로 다가가 복음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정치적 분열 속에서도 사랑과 화해의 복음을 통해 사회의 치유와 회복을 이루는 데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은 정부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로 보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우선임을 강조합니다. 롬 13:1–7절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딤전 2:1–2절에서 “왕들과 모든 높은 관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러나 행 5:29절에서 정부 명령이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할 때, 즉 당시 사법기관의 최고인 산헤드레인 공의회로부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말라는 위협을 받고서 사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에게.“ 순종하기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4. 대단원: 교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미국에서는 계몽주의 전통과 헌법상의 종교·정치 분리 원칙이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습니다. 18세기 독립과 함께 ‘종교의 자유’와 ‘정부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헌법 수정조항(특히 제1조)이 이러한 원칙의 근간을 이룹니다. 미국 교회들은 정치적 목소리를 내되, 특정 정당이나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사회 정의와 인권, 도덕적 가치 실현을 위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 예를 들면 공적 담론 참여, 사회봉사, 성경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는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운동 등, 기도와 선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거 때 교회의 자세는 어떡해야 합니까? 성경은 현대 선거 제도를 직접 다루지 않으나, 다음의 원칙을 통해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 태도를 제시합니다. 롬 13:1–7과 벧전 2:13–17은 모든 권세에 복종하되, 통치자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도록 기도할 것을 권면합니다. 진리와 정의의 증언자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미가 6:8에서는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의와, 자비, 겸손을 실천하도록 촉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함을 시사합니다. 분별 있는 참여를 또한 요구합니다. 교회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기보다는, 성경적 가치, 예를 들면 인권, 정의, 공동체 돌봄 등에 부합하는 정책과 인물을 신중히 검토하고, 기도와 담론을 통해 사회 정의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북이 대치 상태에 있음으로, 무엇보다 안보를 중시하는 정당에 더 큰 점수를 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할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정부에 대한 저항의 사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일반적으로 정부에 복종할 것을 가르치지만, 하나님의 명령과 충돌할 때는 저항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부활을 전하지 말라는 공권력의 명령을 거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시했습니다. 행 5:29절에서 “사람에게 순종하기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의 명령에 의한 금신상 우상 숭배를 목숨을 걸고 거부했습니다. 단 3:16–18절에서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단 3:173: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단 3:183: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6:10절에서는 다니엘이 왕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계속한 사례가 나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와 같이 교회와 정치의 관계는 성경 전체와 교회사에서 복잡하고 다층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언제나 궁극적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상기시키며, 정치적 참여 역시 그분의 정의와 자비, 공의를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정부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우선시하며, 사회 정의와 평화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감당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화평을 주시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화평을 만드는 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마5:9절마 5:9절: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을 만드는 자 즉 평화를 이루는 자의 복됨을 강조합니다. 남북으로, 동서로, 지역으로, 이념으로 갈라지고, 찢긴 대한민국을 살리는 진정한 길은 오직 복음 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확신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일부 극우와 극좌의 행위는 정교 유착에 가까우며, 이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해를 끼치는 행위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교인 각자는 좌 우로 나누어질 수 있으나, 교회는 정치적 중립이 더 성경적이며, 지혜로운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분열, 선동, 가짜 뉴스로 무장한 정치꾼들과 한 패가 되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면, 교회는 하나님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맛 잃은 소금 신세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된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어찌 모리배 정치꾼들과 한패가 되어 국민을 선동하며 분열을 도모할 수 있습니까? 교회는 평화를 만드는 그리스도의 증인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마귀와 온갖 죄악들이 갈라놓은 어두운 이 땅에, 갈라진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메꾸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라지 뜸을 메꾸고 연결시켜 주는, 그리스도의 화평의 삶을 그의 백성인 교회가 닮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을 우상화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언제나 나를 실망시키며, 나를 배신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로운 뜻에 따라, 사람을 세우고, 폐하시며, 다시 세우시는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나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오직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며, 변치 아니하시며,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두십시오. 아멘!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분열과 갈등 속에 있습니다. 이념과 정치로 인해, 형제와 자매가, 친구와 이웃이,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서로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우리를 화평케 하는 자로 부르셨음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갈라진 우리를 하나로 만드셨듯이, 우리도 이 땅에서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을 낮추어 주소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사랑으로 듣게 하시고, 미움과 분노보다 용서와 이해를 선택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입술을 주장하셔서, 상처 주는 말보다 치유하는 말을 하게 하시고, 분열을 조장하는 말보다, 하나 되게 하는 말을 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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