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고전 10:10-11
2. 본문 중심 진리: 바울 사도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다가 심판 받은 역사를 예를 들면서 원망의 죄를 범치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3. 주제: 원망
4. 테마: 원망의 원인
5. 명제: 원망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죄이다.(평가적 명제)
6. 목적: 원망의 쓴 뿌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지를 알려 치로 받도록 돕기 위해서....
7. 질문 제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원망이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Where?)
8. 중심 단어들: 원인들
9. 전환 문장: 원망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죄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원망이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10. 대지
1)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가운데서 생깁니다.
2) 하나님을 시험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3) 탐욕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4) 불신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11. 제목: 감사가 습관이 되도록 하십시오/원망하지 마십시오.
12. 복음: 주님은 우리의 원망의 쓴 뿌리를 용서하시고 고치 사 승리자로 만드시기를 원 하신다
예수님을 모르다가 어느 날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것이 구원 받은 때입니다. 그 때 느꼈던 감격을 여러분은 지금도 느낄 수가 있습니까? 저가 대학 1년 때 예수님을 믿어 구원의 감격을 누린 때가 생각납니다. 그 때 내 가슴은 오랫동안 두근두근 그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기쁜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긴 여정해서 보면 그 사건은 출발에 불과합니다. 예수님 믿었으나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 되는 것만이 아님을 곧 깨닫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참으로 싶지 않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장 크게 쓰시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잘도 넘어지는 우리 자신을 보고 실망도 많이 합니다. 우리의 변화 되지 못한 옛사람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의 축복을 온전히 누릴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쟁취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한 광야 훈련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빨리 훈련을 마쳐서 가나안의 축복을 이미 누리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여전히 아직도 초보에 머물려 여전히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영적인 병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원망이라는 것입니다. 원망과 비슷한 말이 중얼거리다, 투덜대다, 불평하다 입니다. 구약 성경은 우리보다 먼저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입니다. 구약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서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다가 심판 받은 역사를 예를 들면서 원망의 죄를 범치 말 것을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원망의 쓴 뿌리가 어디에서부터 생기는지를 깨닫고 치료 받아 빨리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의 축복을 쟁취하여 누리도록 돕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쟁취한다는 뜻은 죽어 천국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땅에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가리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원망이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생기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가운데서 생깁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430년 동안 애굽 나라의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계교를 물리치시고 마침내 시퍼런 홍해를 가르신 주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해방을 맞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 믿고 마귀에서 해방 받아 구원의 감격을 누린 우리들과 같은 경험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곳이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 아니라 광야 즉 사막이었습니다. 직선으로 가면 7 주일이면 갈 수 있는 길을 들어가는데 40년이나 걸렸습니다. 그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사막 생활을 한 것입니다. 왜 이처럼 광야 생활을 오래 하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아직 약속의 땅 가나안을 싸워 쟁취할 준비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공짜로 굴러 들어오는 롯또 복권이 아니라 믿음으로 싸워 쟁취해야 될 땅이었습니다. 하나니님께서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도 우리의 믿음을 통해 마귀와 싸워 이 땅에서 쟁취할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방금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믿음이 작습니다. 오합지졸에 불과합니다. 오합지졸이 어떻게 전쟁에서 이기겠습니까? 그들이 믿음 없는 오합지졸에 불과한 증거가 바로 끊임없는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하여 구원의 감격을 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벌써 사흘 동안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라라는 곳에 도착하여 보니 물이 써서 먹지를 못했습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신경질이 돋아 난 것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이 넉넉하면 다들 순한 양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경을 만나면 본전이 다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전은 무엇입니까? 지도자 모세에게 원망과 불평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지도자 모세에게 하는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원망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며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요? 우리가 목이 말라 죽겠어요. 왜 우리를 이런 곳으로 인도하사 고생시키시는 것입니까? 이들은 며칠전 자신들을 애굽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벌써 망각한 체 대신 입에서 원망 불평만 터져 나왔습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때 지도자 모세가 엎드렸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림이라는 곳에 샘 열둘을 주셨습니다. 그곳에 그들은 얼마동안 장막을 치고 주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가 원망과 불평을 잘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이미 베푸신 은혜를 쉽게 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은혜 망각증이 원망과 불평의 영적 병을 낳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원망이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생기는 것일 까요?
2. 하나님을 시험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광야 여행은 계속 되었습니다.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또다시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우리가 애굽에 살 때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죽게 되었구나.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예수 안 믿을 때가 더 좋았지 그때는 그래도 고기를 먹을 수가 있었는데 예수 믿고 나서 더 어려워 졌어 그런 원망이요 불평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여호와께서 원망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서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버리시지 아니하시는 여호와의 은혜를 또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기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르비딤에 도착했는데 역시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도 하도 어이기 없어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는냐? 그러자 백성들이 더욱 사납게 모세에게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족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우리식으로 의역을 하면 당신이 나를 전도해서 예수 믿게 되었는데 예수 믿은 결과 내가 이렇게 망하게 된 거야 나를 전도한 당신 때문에 내가 망하게 되었어 라는 어처구니가 없는 막말과도 같습니다. 사실 이 원망은 하나님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시는지 보자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때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하나님께 탄식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며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께서 모세가 들고 있는 지팡이로 바위를 치게 하사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원망하는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맛사라 불렀습니다. 맛사라는 뜻은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으며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원망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지 보자라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임을 아십니까?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과 다투는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원망이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생기는 것일 까요?
3) 탐욕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 여호와 하나님을 잘 모르는 애굽 백성 들도 섞여 나왔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의 특징이 탐욕입니다. 탐욕이란 만족을 모르는 욕심입니다. 이들이 탐욕을 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충동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영적 병입니다. 몇몇 불평분자가 온 이스라엘 전체에 원망의 전염병을 퍼뜨린 것입니다. 우리가 애굽에 살 때가 더 좋았지 괜히 모세를 따라와서 이 고생을 한다 라고 원망 불평을 터뜨린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신세가 처량하게 생각 되었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울며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우리가 애굽에 살 때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백성이 울며 지도자 모세에게 원망을 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신 여호와가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지도자 모세도 더 이상 중보 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모세도 반복 되는 이들의 죄를 보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께 하소연을 했습니다. 주께서 왜 이종을 괴롭히십니까? 왜 이 백성을 나에게 맡기십니까? 내가 이 백성들 다 낳았습니까? 어찌 이들을 품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이들에게 먹일 고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차라리 나를 죽여 고난을 보지 않게 하소서. 여러분이여! 죄를 반복적으로 짓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모세는 우리의 중보자 대신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온전한 중보자입니다. 인간 모세도 온전한 중보자는 못됩니다. 오늘 차리라 나를 죽여 주옵소서 이 백성을 더 이상 못 섬기겠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원망하는 모세를 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를 위해 오늘도 중보 기도하시는 예수님이 계심을 믿습니까? 그 분의 온전하신 중보기도 때문에 내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이번에는 메추라기 고기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기도 응답은 쓴 고통을 동반하는 응답이었습니다. 민수기는 그러나 그들이 그 고기를 씹기도 전에 큰 재앙을 여호와께서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기를 주셨지만 동시에 재앙도 같이 주셨습니다. 탐심을 품다가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을 장사한 곳 이름을 기브론 핫다아와라 로 불렀습니다. 만족을 모르는 탐심에서 원망과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원망이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생기는 것일 까요?
4) 불신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눈앞에 보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12 각 지파 중 1명을 대표로 뽑아 12명으로 가나안 땅의 정탐꾼으로 삼아 파견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과연 어떤 곳인지를 정확하게 알아보도록 하기위해였습니다. 40일 동안 정탐한 12명이 돌아와 보고를 했습니다. 두 편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나머지 10명의 의견이 두 편으로 나누어져 180도 보고 내용이 달랐습니다. 먼저 열명이 이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과연 그 땅은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온 포도를 보십시오. 장정 두 사람이 겨우 들 정도의 큰 포도송이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땅 거민들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큽디다. 거기 사는 아낙 자손을 보았는데 신장이 장대해서 거인 같아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불과하게 보였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절대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단지 환경만 쳐다보았을 뿐입니다. 결론은 우리는 할 수 없다는 패배감이었습니다. 이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여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하는가? 우리 처지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하며 모세를 배척하고 다른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원망과 불평이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 없는 보고를 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옷을 찢고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며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으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니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하니.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한 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에 불과 합니다 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러자 온 백성이 돌로 치려했습니다. 저놈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죽여 없해자 라고 원망하며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여호와와의 영광이 회중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 하겠는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는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가 터지신 것입니다. 이 때 중보자 모세가 다시 엎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든 그리하시며 세상 사람들이 듣고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명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죄악에도 불구하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시는 예수님 은혜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살아 있는 것입니다. 중보자 대신 예수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멸망 받아서야만 맞당한 자들입니다. 아멘! 그러나 다음 말씀이 또한 중요합니다. 내 영광과 애굽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종 갈렙과 여호수아는 나를 온전히 따라은적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리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원망과 불평은 믿음 없는 행위이며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믿음 없는 사람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과 그리고 이 백성들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축복을 누릴 것이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원망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믿음이 없어 한나이 약속한 가나안땅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바로 눈앞에 보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방황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서 다 죽고 난후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이 모세를 이어 지도자가 되어 후손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믿음으로 정복하고 쟁취한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정복한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원망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죄임임을 오늘 말씀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만족을 모르는 탐심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 때문에 생기는 무서운 영적 병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많으신 우리 주님은 우리의 반복 되는 원망의 쓴 뿌리를 용서하시고 치료하사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는 승리자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원망의 쓴 뿌리를 치유 받는 길은 평소 주님과 인격적인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주님과의 교제의 회복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성경은 항상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감사는 환경을 쫓아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광야입니다. 주위의 모든 환경은 나를 괴롭입니다. 불만족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런 역경 가운데서 주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십시오. 주님 내가 사는 것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해보십시오. 알 수 없는 역경을 만나더라도 협력하여 선한 뜻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지금 나를 훈련하사 주님이 쓰실 그릇으로 빚어 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훈련의 손길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하사 내 죄를 위해 피 흘려주셨고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의 그 크심 사랑을 의지하여 감사드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감사해보십시오.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하는 습관을 키우십시오. 감사 꺼리를 의도적으로 찾아 감사해보십시오. 감사가 습관이 되도록 하십시오. 감사할 할 때 주님과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믿음도 자라고 순종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원망 대신 감사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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