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설교

성공자가 되기 위해 계발해야할 태도

wordlove 2009. 9. 7. 09:09

1. 본문: 잠 15:32-33

2. 본문 중심 진리: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기는 것이며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지혜를 얻으며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다.

3. 주제: 성공 자

4. 태마: 성공 자가 되기 위해 계발해야 할 태도

5. 명제: 성공 자는 만들어지는 것이다.(평가적 명제)

6. 목적: 성공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소개하여 성공 자가 되도록 도전하기 위해서

7. 질문 제기: 성공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8. 중심단어들: 태도들

9. 전환 문장: 성공 자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공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10. 대지

1) 훈계 받기를 좋아해야한다.

2) 견책을 달게 받아야한다.

3) 여호와를 경외해야한다.

4) 겸손해야한다.

11. 제목: 성공 자가 되기 위해 계발해야 할 태도

12. 복음: 하나님은 태도를 잘 계발하는 사람을 성공자로 만드신다.


본문: 잠 15:32-33

 

여러분 손 잘 씻습니까? 부지런히 손 씻기를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종 풀루로 전 세계가 떨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 명이 이미 사망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4명이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20세기 초에 스페인에서 일어난 스페인 독감의 유행으로 무려 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무서운 역사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신종 풀루에 대한 백신이 아직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니 예방책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이라고 생각 됩니다. 손을 잘 씻으라고 당국과 의료기관에서 신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권면에 귀 기울여 잘 따르고 지키는 것이 자기 건강을 지키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은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기는 것이며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지혜를 얻으며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은 지혜서입니다. 우리보다 인생을 먼저 살아본 지혜 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시고 싶은 말씀은 성공 자는 만들어 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성공 자가 되기 위해 계발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소개하여 저와 여러분이 성공 자가 되도록 도전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성공 자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공 자가 되기 위해 계발해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1. 훈계 받기를 좋아해야합니다.

훈계가 무엇입니까? 여기 훈계는 niv 성경은 discipline 즉 훈련의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훈련을 싫어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경히 여기는 자 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훈련을 싫어하는 자는 자기 스스로를 멸시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가끔 사랑이 오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오냐오냐하는 명목적인 사랑은 어리석은 사랑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훈련을 동반합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훈련을 시킵니다. 훈련이란 좋은 습관을 계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사하는 법, 밥 먹는 법, 말하는 법 사실 산다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이 좋은 습관 훈련과 관련 되어있습니다. 사랑은 훈련입니다. 학교 교육도 좋은 습관을 계발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공부도 훈련입니다. 공부하는 것이 좋은 습관이 되어 버린 학생이 그 습관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 것입니다. 훈련을 잘 받은 학생은 결국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나이가 차면 군데에 입대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훈련소에 입소해서 기초 훈련을 받습니다. 군복무 동안 끊임없이 훈련 받습니다. 강건한 군인이 되어야 나라를 지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병사는 쓸모가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총 맞아 죽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훈련을 싫어하는 자는 자기 스스로를 경시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까지 훈련을 계속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곧장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고 싶었지만 이들은 가나안 땅의 족속들과 싸워 이길 믿음이 아직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광야 훈련을 통해서 믿음의 군사로 훈련 시켰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도 제자를 삼아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예수 믿고 교회를 출입하는 교인이 아니라 제자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제자는 군사라는 뜻과 동의어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의 군사로 세워져야할까요? 예수 믿는 우리는 이 땅에서 원수 마귀와 싸워 마귀에게 속아 지옥 가는 영혼들을 구출해야할 예수님의 군사들입니다. 영적 전투를 통해 마귀를 깨뜨리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성장 시켜 우리 구주의 이름을 높이며 영광 돌릴 거룩한 예수님의 사명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도록 훈련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모든 구원 받은 천국 백성들은 예수님 학교에 입학한 것입니다. 예수님 학교를 일명 믿음의 학교라고 부를 수 도 있습니다. 이 믿음의 학교의 교과목의 제목이 순종 훈련입니다. 예수 믿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 훈련이 잘될수록 믿음의 학교에서는 진급이 빨라집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학년은 몇 학년입니까? 우리의 신앙은 순종 훈련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주일 예배를 성수하라. 기도하라. 은사를 따라 봉사하라. 주님이 주신 제물로 헌신하라. 서로 사랑하라. 원수를 용서하라. 주님의 음성 듣기 위에 하루에 제일 먼저 QT하라, 전도하라, 이처럼 끊임없이 대장되신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훈련을 주십니다. 그 훈련을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훈련을 경시하는 사람은 신앙 성장이 안 됩니다. 믿음의 약졸이기 때문에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겸허히 자신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 평소 묵묵히 순종하는 사람은 즉 자신을 훈련에 헌신하는 사람은 믿음이 강건해집니다. 그러면 주님이 더 큰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번에 박주익 집사님이 안수 집사로 피택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난 5 년 동안 하나님의 훈련을 잘 통과한 것의 결과인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무자격자를 사용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집니다. 신앙의 훈련을 평소 잘 받은 사람을 주님은 부르셔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지 아니하실까? 라고 의문을 가지신분 안계십니까? 나는 평소 작은 일에 순종 훈련을 잘 받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평소 작은 순종 훈련부터 잘 받은 사람은 반드시 믿음의 성공 자가 되는 것입니다. 훈련은 좋은 습관 계발하기와 같은 의미입니다. 하루 밥 세끼 먹는 것 쉽습니다. 왜요? 습관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힘든 훈련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습관 계발하기라고 생각하십시오. 습관을 쫓아 주일 성수하시고 습관을 쫓아 봉사하시고 습관을 쫓아 기도하십시오. 습관이 되면 모든 훈련도 쉽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습관을 계발한 사람을 결국 성공 자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공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2. 견책을 달게 받아야합니다.

여기 견책은 교정의 의미입니다. 고친다는 뜻입니다. 자기 교정을 잘하는 사람이 지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와 하물로 말미암아 고장  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훈련의 말씀 가운데는 나 자신의 고장 난 부분을 고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견책의 말씀을 듣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며 아예 불순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순종에는 육신이 약해서 자신도 모르게 불순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알고 보면 고의로 짓는 고범 죄가 많이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나라 초대 왕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는 참으로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고 나자 마음에 교만이 생겼습니다. 그 교만이 어떻게 나타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의로 불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의로 불순종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변명하기, 이유대기,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기 등으로 자신의 교만을 숨깁니다. 이것들은 알고 보면 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요 거역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사울 왕에게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는 모든 적들을 다 죽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사울 왕에 대한 하나님의 믿음의 시험 득 순종 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값진 소나 양 염소들은 죽이지 않고 살려 가지고 왔습니다. 사물엘 선지자가 물었습니다. 왕이시여! 저 뜰에서 나는 소와 양과 염소가 우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사울 왕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아! 충성스런 우리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 위해 살려 데리고 온 것입니다. 사물엘 선지가 되묻기를 왕이시여!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 다 죽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아! 그것이 우리 백성들의 눈이 하도 무서워서 본인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불순종을 이유 대기와 백성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런 거역하는 불순종이 계속 반복 되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보다 순종을 더 좋아하심을 모르십니까? 많은 헌금을 드림보다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심을 모르십니까? 왕이시여! 거역하는 것은 점쟁이의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우상 앞에 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말씀을 버려셨기에 여호와 하나님도 왕을 버려 다른 사람에게 왕의 자리를 줄 것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이 고치라는 말씀을 듣고도 고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것이 거역의 죄요 교만의 죄요 그 결과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 반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늘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입니다.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사울 왕과 대조적으로 다윗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견책의 말씀을 듣고 즉시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가 죄를 지었습니다. 정직하게 통회 자복했습니다. 사울과 다윗와의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울 왕은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거역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잘했습니다. 회개는 자기 죄를 인정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회개한 다윗왕은 용서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더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회개를 잘하는 개인과 교회위에 거룩하신 영이신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회개는 고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견책을 잘 받는 사람을 결국 성공 자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공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3. 여호와를 경외해야합니다.

여기 경외 심는 존경심에 기초한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인격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존경심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주님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심의 대상입니다. 존경하지만 그분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귀와 우리는 비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경외심이 아니라 공포심을 느낍니다. 뱀이 무서운 것처럼 마귀는 무서운 것입니다. 여기 경외심은 공포심이 아니라 존경심 가운데 나오는 두려움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되풀이 말씀합니다. 지혜는 예수님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지혜의 근본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경외심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훈련 중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심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사막의 독사인 불 뱀을 보내 물려 죽게 했습니다. 큰 고통을 만나자 마침내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보자 모세를 찾아와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며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울며 회개를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자기 백성을 구원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구원의 처방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처방책이 이상합니다. 놋으로 뱀 모양의 형상을 만들어 높은 장대 위에 매달아 땅에 곧아라. 그리고 너희 백성들에게 내 말을 전하라. 이 장대위에 높이 달린 놋 뱀을 쳐다보는 자는 다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다 죽으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두 종류의 반응이 사람들로부터 나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코 방귀를 뀌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독사에게 물렸다면 약을 써야지 어찌 장대위에 높이 달린 불 뱀을 쳐다보란 말이냐? 누가 그 말을 믿어!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어야지 우리 머리로 잘 이해가 안 되어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어야지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말씀을 경외하지 아니한 불신자들은 다 뱀의 독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믿은 사람들은 독사의 독으로부터 다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장대위에 높이 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오늘도 마찬 가지입니다. 저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사랑하사 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예수님을 자신의 죄로부터 구원해 주실 구세주와 나를 만드신 하나님으로 믿으면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지금도 이 말씀 듣고 나타나는 반응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코 방귀를 뀌면서 그걸 어떻게 믿어 천국과 지옥을 가봤어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경외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180도 다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기에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말씀대로 심판 받아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말씀대로 죄 용서함 받아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불신자은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인 것입니다. 믿는 자는 말씀대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입니다. 믿는 자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를 결국 성공 자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공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4. 겸손해야합니다.

성경에서의 겸손은 자기 권리 혹은 주장 포기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이실 뿐만 아니라 모범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겸손이 무엇이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이셨지만 모든 하늘 영광을 다 포기하시고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비천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의 겸손이라고 부릅니다. 그 분은 이 땅의 주인이셨지만 우리 인간의 종이 되셔서 종처럼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를 섬기시기위해서 온갖 모욕을  다 담당하셨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내 죄를 안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본성이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삶을 보십시오. 인자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철저히 포기하셨습니다. 겸손은 자기 포기입니다. 마귀는 원래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천사 주제에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하나님 같이 되어 보려고 교만을 품었습니다. 천사가 교만을 품자 마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마귀도 겸손하면 천사가 됩니다. 이 세상을 보십시오. 마귀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습니다. 자기주장, 자기소리, 자기 권리만 소리 높이 외칩니다. 온 세상이 마귀를 닮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 보다 마귀를 더 사모하는 것 같습니다. 마귀를 닮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보아도 마귀는 보이는데 예수님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겸손하신 예수님은 3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본연의 자리도 승천하셨습니다. 그러자 모든 세상 피조물들이 참 왕이신 주님 앞에 다 무릎을 꿇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모든 무릎이 예수님 앞에 꿇게 되어 그분을 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겸손하신 주님이 존귀함을 입으신 것입니다. 겸손은 존귀의 길잡입니다. 겸손의 반대가 교만입니다. 잠 18: 12“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보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자기 포기라고 했습니니다. 자기 포기는 소극적으로는 빌2: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하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사람은 다투지를 않습니다. 잘 다투십니까? 자기 포기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무엇입니까? 자기 포기라고 했습니다. 자기 포기는 적극적으로는 빌2:3“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자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바로 겸손한 마음입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다투지 아니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때 주님은 그 사람을 존귀하게 높이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존귀함을 덧입고 싶습니까? 우리 예수님처럼 자기를 포기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다투지 마십시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결국 성공자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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