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이론/성경적 설교 작성법

구하여 찾음

wordlove 2023. 4. 16. 14:17

1 본문: 7:7-11

2. 본문 요약: 구하라, 찾으라, 두드려라

3. 본문 주제: 약속된 은혜

4. 본문 테마: 약속된 은혜를 누리기 위해 지켜야 할 조건

5. 명제: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은혜를 누릴 수 있기에 앞서 지켜져야 할 조건들이 있다. (평가적 명제)

6. 목적: 우리 인간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조건들을 소개하기 위하여

7. 질문제기: 조건들이 무엇입니까?

8. 전환 문장: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은혜를 누릴 수 있기에 앞서 지켜져야 할 조건들이 있다. 조건들이 무엇입니까?

9. 대지:

10. 제목: 구하여 찾음

 

아래의 설교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 설교를 편집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삶의 불안과 위험에 대처함에서, 오늘 읽은 본문은 참으로 위로가 되는 은혜로운 약속들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우리가 이것에 확신을 갖도록 주님은 거듭 반복하시며, 더욱 강한 형태로 표현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삶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어떤 의미에서 아브라함 속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에 대해 히 11:8절이11:8절이 ”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했고, 평화로웠고, 그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였습니까? 300여 년 전에 살았던 어떤 노 청교도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나 누구와 함께 갔는지는 알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는 다른 분과 함께 그 여행을 간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떠나지도 않겠고 그를 버리지도 않겠다고 그에게 말씀하신 분이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그에게 마주쳐 오고 있던 사건들과 일어나려는 문제들이 불확실했지만, 아브라함은 완전히 행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함께하는 여행의 벗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 해석 규범은 어떤 구절을 그 문맥에서 떼어내는 것의 위험함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그 배경에 맞추어 읽지 않음으로써 성경을 왜곡하거나, 성경의 그 본문의 의미를 바로 보지 못함으로 우리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위험을 피해야 합니다. 이것은 특히 본문과 같은 말씀에 중요합니다. 성경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하니그러면 되었다라고 말하면서 '이 말씀은, 내가 원하고 소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한다는 것을 뚜렷이 밝힌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타의 가르침을 무시하며, 그들의 요구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가 허락되지 아니하면 낙심과 절망 가운데 깊이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지 않는 모양이다.'라며 실망합니다. 이런 일을 우리는 피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 모든 약속을 전체로써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7절과 8절만을 살피고 있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7-11절을 살피고 있는 까닭은 이 말씀의 여러 부분을 분석함에서 잘못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 말씀을 전체로써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시겠다고 보증하신 하나의 보편적 약속이기는커녕 사실은 이보다 훨씬 더 큰 것입니다. 이 약속을 올바로 보는 방법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째서 여기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7장을 일관해서 흐르는 그 주제란 비판(심판)의 주제입니다. 이생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비판(심판) 아래 살고 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하나님의 눈이 우리 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생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은 모두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권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주제를 즉각 적용하셨습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는 문제로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자신도 비판(심판) 아래 있으므로 비판하는 일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7-11절의 이 약속을 어째서 이 지점에서 말씀하셨습니까? 그 대답은 이와 같습니다. 1-6절에서 우리가 마치 심판자인 양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위험과 마음속에 신랄함과 증오심을 품는 위험을 보여 주었습니다. 주님은 형제의 눈에서 티를 뽑아내려 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제거하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것은 우리 정체를 우리 자신에게 보여 주고 우리에게 은혜가 매우 필요함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비판을 받을 엄청나게 높은 표준을 우리 앞에 놓으셨습니다. 이것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의 교만은 꺾이고 이런 일들에 자격이 있는 자가 누구일까? 그뿐이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가 깨끗해져야 할 필요를 깨달으며 우리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사악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 모든 결과로 우리는 철저히 가망 없고 소망이 없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산상설교에 따라 살 수 있을까? 우리는 도움과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나전후 문맥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까닭은, 이 영광스런 복음과 마주 대하고 서 있을 때, 우리의 철저한 무능력과 은혜가 절대 필요함을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주께서 주시는 도움과 은혜가 우리의 손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점을 강조하시기 위해 거듭 반복하셨습니다. 이런 약속에 비추어 볼 때 우리 기독교 생활의 자질은 어째서 이처럼 빈약하냐고 말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받지 못했는가, 어째서 우리에게 문이 열리지 않았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주는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이 은혜로운 약속을 이용하라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은혜를 누릴 수 있기에 앞서 지켜져야 할 조건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조건들이 무엇입니까?

 

첫째 조건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는 9-11절에서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마 7:10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마 7:11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인식하는 것은 모든 조건 중의 중심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주된 문젯거리의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 생활에서 가장 큰 단점으로 생각되는 것을 한마디로 말하라 한다면 나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 그렇습니다.'라고 말하며 이것을 알고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일상생활과 삶에서 이것을 알고들 있습니까? 주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라고 하십니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어째서 '우리가 악한 자'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 까닭은 주님은 그들과 본질에서 다르심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시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예수라 하는 일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란 말씀은 우리가 악한 것을 행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악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부패했고 악합니다. 본질에서 부패하고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본성으로 우리는 진노의 자식들이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원수들입니다. 본성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떤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만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까? 성경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요 1:11,12”1:11,12” 자기 땅에 오시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이 거듭나실 때, 여러분이 하나님의 새 생명과 새 상품을 받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라면 그 아버지의 성품을 띱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한 성품을 받기까지 여러분이나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새 성품을 가져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의 자녀가 되기까지 하나님과 접촉이나 교제는 없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들의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상속자가 아닙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대적하여 죄를 지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나 그가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 보내심으로 우리 죄와 죄책을 처리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고 우리는 새 생명과 새 성품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 우리에게 그의 성령, 곧 양자의 영을 주셔서 우리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아버지이신 특별한 태도를 보이심에 확신합니다. 이것은 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이 있으며 나를 염려하시며 나를 돌보시며 나에 대해 어떤 계획과 목적이 있으며, 항상 나를 축복하고 도우시기를 바라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을 붙드십시오.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던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은혜를 누릴 수 있기에 앞서 지켜져야 할 조건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조건들이 무엇입니까?

 

째 조건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악한 것은 무엇이든 여러분에게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것만을 주실 것입니다. 9, 10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이것이 자기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불쾌한 일이 생길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악한 것을 결단코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코 잘못을 범하지 않습니다. 땅의 아버지도 떡 대신 돌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잘못을 범합니다. 땅의 아버지는 그 순간에 기껏해야, 자기 자식의 선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후에 그것이 잘못임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는 그런 잘못을 범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것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보살피시고 우리를 지키시는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악한 것을 결단코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잘못 인도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기만 한다면 미래에 대한 우리의 전망은 전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은혜를 누릴 수 있기에 앞서 지켜져야 할 조건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첫째 조건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째 조건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악한 것은 무엇이든 여러분에게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 조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선한 은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11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것은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좋은 것들이란 무엇입니까? 주님은 누가복음 11장에서 그 해답을 주셨습니다. 13: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셈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요약하여 벧후 1:3에서”1:3에서”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린다는 의미가, 우리가 좋아하는 무엇이든 구하기만 하면 받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것, 여러분의 영혼 구원을 위한 것, 여러분의 궁극적 완전,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가까이하게 하고, 여러분의 삶을 크게 하고, 여러분에게 철저하게 좋은 이것들의 하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실 것입니다. 이 좋은 것들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찾아내어 구하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 우리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 곧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이것을 구하십시오. 끈질기게 구하십시오. 채워 주실 때까지 구하십시오. 또한,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면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더하여지리라는 하나님 아들의 말씀을 우리는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구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우리 자신은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모든 걸 해 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약속된 은혜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죽음을 깨뜨리시고 3일 만에 부활하사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시고 채워 주시고자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이 사랑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풍성함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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