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골 3:5
2. 본문 요약: 탐심은 우상 숭배이다.
3. 주제: 내가 만든 신 우상
4. 테마: 내가 만든 신 우상의 실체
5. 명제: 내가 만든 신은 반드시 나를 배신한다. 평가적 명제
6. 목적: 우상의 실체를 바로 알아 우상에서 탈출하도록 돕기 위해서
7. 질문제기: 우상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8. 전환 문장: 내가 만든 신은 반드시 나를 배신한다. 우상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9. 대지
10. 제목: 우상,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세상에는 실체보다 우상이 더 많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입니다. 2008년 중반에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가 닥치자, 한때 부유하고 인맥 넓던 사람들이 줄을 이어 비참하게 자살했습니다. 연방 주택담보대출공사 프레디맥 (Freddie Mac)의 재무 담당 부사장 대행은 자택 지하실에서 목을 맸습니다. 1830년대에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을 설명하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풍요의 한복판에서 우울한 이상 기류가 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미국인들은 풍족해지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으나 그런 희망은 신기루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현상입니다. 절망과 슬픔은 다릅니다. 슬픔은 위로받을 수 있는 고통입니다. 슬픔은 여러 좋은 것 중 하나를 잃었을 때 찾아옵니다. 반면에 절망은 위로받을 길이 없습니다. 궁극적인 것을 잃었을 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달리 의지할 만한 대안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기운이 꺾입니다. 정신없이 바쁜 호황기에도 만연해 있다가 경제적 내리막길을 걸을 때 지독한 절망으로 변하는 이 '우울한 이상기류'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토크빌은 삶 전체를 “이 세상의 부실한 행복" 위에 세워 올린 결과라고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오늘 저는 우상의 실체를 바로 알아 우상에서 탈출하도록 돕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내가 만든 신은 반드시 나를 배신합니다. 우상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1. 우상이 온 사회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란 단어를 들으면 현대인은 목상 앞에 절하는 원시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사도행전에는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의 문화가 생생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당시 도시마다 좋아하는 신이 있어서 신전을 짓고 신상을 숭배했습니다. 바울이 아덴(아테네)에 가 보니 말 그대로 신상 천지였습니다(행 17:16). 아테나 여신의 파르테논 신전이 전체를 압도했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전쟁의 신 아레스, 다산과 부의 여신 아르테미스,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등 온갖 신이 광장마다 즐비했습니다. 우리 현대 사회도 고대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문화마다 그 문화를 지배하는 우상이 있습니다. 사무실이나 헬스장이나 스튜디오나 경기장 같은 신전이 있어, 행복한 삶이라는 복을 얻고 액운을 물리치려면 거기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미모와 권력과 돈과 성취의 신이란 바로 우리 개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에서 신적 위치를 점한 이것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아프로디테 동상 앞에 무릎 꿇지는 않을지 몰라도, 오늘날 많은 젊은 여성이 외모와 몸매에 과도히 집착한 나머지 우울증과 각종 섭식장애에 시달립니다. 실제로 아르테미스에게 향을 피우지 않아도 돈과 성공을 세상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면 우리도 자녀를 일종의 인신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더 많은 재물과 위신을 얻고자 가정과 공동체마저 팽개칩니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우리 문화가 배출해 온 한 인간군에 주목했습니다. 성취도는 높지만 “수직과 수평의 균형을 잃은” 부류입니다. 그들은 멘토나 상사와의 수직 관계에서는 처세술이 좋아 출세 가도를 달리지만, 배우자나 친구, 가족과의 수평 관계에서는 진정한 결속을 이룰 줄 모릅니다. “수많은 대통령 후보가 말로는 가족을 위해 출마한다지만 실제로는 선거 운동에 삶을 몽땅 쏟아붓느라 정작 가족은 안중에도 없다.” 세월이 가면 "권력의 무상함과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끼지만, 자녀, 배우자와는 이미 멀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상 공장과 같습니다. 그러나 2008~2009년에 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소위 탐심의 문화가 그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오래전에 사도 바울은 탐심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우상 숭배"(골 3:5)라고 습니다. 즉 돈은 신의 속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돈의 신적 힘을 경험하고 그것에 점차 마음을 뺏기면 자유는 사라지고 숭배와 복종 관계에 가까워집니다. 돈은 영적 중독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중독처럼 피해자에게 자신의 진짜 덩치를 숨깁니다. 아무리 갈망해도 만족은 자꾸만 줄어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채우려고 더 크고 많은 모험도 불사하다가 결국 파탄에 이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일어난 영걸족의 출현도 비슷한 현상입니다. 회복에 나설 때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어떻게 그렇게 눈이 멀 수가 있었지?라는? 의문이 듭니다. 깨어날 때 우리는 숙취 때문에 전날 밤 일이 통 기억나지 않는 사람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토록 이성에 어긋나게 행동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옳은 길을 시야에서 완전히 놓친 것일까요? 성경은 인간 마음이 '우상 공장'이라서 그렇다고 답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우상'(idols) 하면 눈에 보이는 신상을 떠올립니다. 물론 아직도 세상 곳곳에서 전통 우상 숭배가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우상 숭배는 모든 사람에게 두루 널리 퍼져 있습니다. 에스겔 14장 3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장로들을 가리켜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처럼 장로들도 그런 지적에 틀림없이 이렇게 반응했을 것입니다. "우상이라니요? 무슨 우상? 저한테는 아무런 우상도 보이지 않는데." 여기서 하신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마음이 성공, 사랑, 재물의 소유, 가정 등 좋은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뜻입니다. 우리 마음은 그런 것을 신격화해 삶의 중심에 둡니다. 그것만 얻으면 존재감과 든든함과 안전과 충족감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톨킨의 책 반지의 제왕에서 핵심 소재는 악의 군주 사우론이 소유한 힘의 반지입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라도 이 반지를 끼려는 사람은 누구나 탐욕에 물들게 됩니다. 톨킨에 해박한 학자인 톰 쉬피 교수는 이 반지를 “심리적 증폭기”라 불렀다. 마음의 가장 절실한 갈망을 우상으로 확대시킨다는 뜻입니다.' 그 책의 선한 등장인물 몇은 노예를 해방시키거나 백성의 영토를 지키거나 악인을 정의로 심판하려 합니다. 다 좋은 목표입니다. 다만 그 반지를 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표를 이루려 합니다. 반지가 좋은 것을 절대화해서 다른 모든 도의나 가치관을 전복시킵니다. 이 반지를 끼는 사람은 점점 더 거기에 예속되고 중독됩니다. 그것 없으면 못 사는 게 바로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꼭 손에 넣어야만 하기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한때 존중하던 규정도 어기고 남들과 자신마저 해칩니다. 우상은 끔찍한 악을 낳는 영적 중독입니다. 톨킨의 소설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이 돈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성경의 경고를 이제 많은 이가 더 귀담아듣습니다. 돈은 삶을 바꾸어 놓고 문화를 만들어 내는 강력한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숭배자의 마음을 찢어 놓는 우상입니다.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으며 이미 우상이 되어 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도덕 규범은 십계명이고 그중 제1계명은 이렇습니다.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출20:2-3), 여기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의문이 있습니다. "다른 신들"이란 무엇인가요? 곧바로 답이 나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4~5절). 세상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돈이나 섹스를 신으로 떠받들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삶의 무엇이든 우상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대용품, 즉 '가짜 신'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여성은 성장기에 가난했는데 성인이 되어 재정 안정에 집착한 나머지 좋은 사람을 여럿 놓치고 정작 사랑하지 않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얼마 못 가 이혼했고,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고생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녀가 행복의 기초로 삼았던 것은 오히려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기초를 엉뚱한 데 두었기 때문입니다. 경우마다 좋은 것 중 하나가 최고의 것으로 둔갑해서 다른 모든 가치를 짓밟고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가짜 신은 늘 실망을 안겨주기 마련이며 그 과정이 파괴적일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우상을 나쁜 그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자체가 나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더 좋은 것일수록 그것이 우리의 가장 깊은 욕구와 희망을 채우리라는 기대도 커집니다. 무엇이든 가짜 신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삶의 가장 좋은 것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을 거야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무엇이든 당신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당신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한다면 그게 바로 우상입니다. 무엇이든 워낙 당신 삶의 중심이자 필수여서 그것 없이는 살아갈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가짜 신입니다. 우상은 마음을 지배하므로 당신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열정과 에너지, 돈과 정서적 자원을 다분히 거기에 쏟을 수 있습니다. 가정과 자녀, 직업과 돈벌이, 성취와 평론가의 호평, 체면과 사회적 지위가 다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로맨틱한 이성 관계, 업계의 인정, 안전하고 평안한 환경, 외모나 두뇌, 정치나 대의명분, 도덕과 가치관, 심지어 기독교 사역에서 성공하는 것도 다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당신이 그것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그게 곧 우상입니다.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을 거야,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중요해지고, 안정감이 들 거야. 이런 관계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가장 적합한 말은 숭배일 것입니다. 예컨대 아름다운 몸은 좋은 것이지만 이를 '신격화'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단지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프로디테입니다. 사람들과 문화 전체가 끊임없이 외모 때문에 고민하고, 거기에 시간과 돈을 지나치게 쏟아붓고, 어리석게 성품까지 외모에 기초해 평가하게 됩니다. 당신의 행복, 삶의 의미, 정체성에 하나님보다 더 영향을 끼친다면 무엇이든 우상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 숭배는 지극히 복잡한 개념이라서 지적,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영적 범주를 모두 아우릅니다. 우선 개인의 우상으로는 로맨틱한 사랑과 가정, 돈, 권력, 성취, 속한 분야의 인맥, 타인이 정서적으로 의존하기를 기대하는 것, 건강, 몸매, 매력적인 외모 등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희망과 의미와 충족을 이런 데서 얻으려 합니다. 문화적 우상은 군사력, 기술 발전, 경제 번영입니다. 전통 사회의 우상에는 가정, 고된 노력, 의무, 도덕적 가치가 포함되는 반면, 서구 문화의 우상은 개인의 자유, 자아 발견, 개인적 풍요, 성취 등입니다. 지적 우상도 있는데, 흔히 이를 '이데올로기'라 한다. 예컨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유럽 지식층은 루소의 성선설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는데,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교육과 사회화가 부실한 탓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상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영국 현대 복지제도의 입안자로 널리 알려진 비어트리스 웹은 이렇게 썼습니다. 1890년이었던가? 한때 나는 일기장에 "인간의 타고난 선(善)에 내 모든 것을 걸었다"라고 썼습니다. 35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지만, 인간 내면의 악한 충동과 본능은 영원합니다. 아무리 (사회) 제도가 바뀌어도 부와 권력에 끌리는 마음의 변화는 요원합니다. 악한 충동을 제어하지 않는 한 지식이나 과학이 아무리 쌓여도 소용없습니다. 각 직업 분야에도 우상이 있습니다. 타협할 수 없는 절대가치입니다. 우상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리고 우상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신은 반드시 나를 배신합니다. 우상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2. 마음속 우상이 삶 전체를 지배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속 우상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성경은 세 가지 기본 은유로 기술한다. 그들은 우상을 사랑하고, 우상을 믿고, 우상에 순종합니다. 우선 성경에 우상이 결혼의 은유로 표현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참 배우자는 하나님이어야 하며 그분보다 다른 것을 더 갈망하고 즐거워하면 이는 영적 간음입니다. 성경은 우상을 종교적 은유로 표현할 많습니다. 참 안전을 얻으려 합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삶의 가치를 느끼기 위해 결코 잃어서는 안 될 그것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이런 신들이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 믿고 그 비위를 맞춰 환심을 사려고 '제사’를 지냅니다. 거기서 자신감과 안전을 얻으려 합니다. 성경에 우상은 정치적 은유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자 군주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무엇이든 자신이 사랑하고 믿는 대상 또한 섬기게 마련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타협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보다 중요해지면 우리를 속박하는 우상이 됩니다. 이런 우상이 우리를 지배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 없이는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서입니다. 무엇이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우리의 주인입니다. 권력을 구하는 사람은 권력에 지배당하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기 원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지배당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에게 지배당합니다. 흔히 말하는 심리적 문제도 사실은 순전히 우상숭배문제입니다. 완벽주의, 일 중독, 만성적 우유부단, 남의 삶을 통제하려는 욕구 등은 모두 좋은 것을 우상으로 둔갑시킨 결과입니다. 그 비위를 맞추려고 하면 결국 지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우상은 우리 삶을 지배합니다. 내가 만든 신은 반드시 나를 배반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로 돌이키십시오.
앞서 봤듯이 슬픔과 절망은 크게 다릅니다. 절망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둘의 차이는 우상 숭배입니다. 한국의 어느 기업가는 3억 7천만 달러의 투자금이 거의 다 날아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경찰에게 “종합주가지수가 1,000 이하로 떨어지자 남편이 매일 술만 ”퍼 마시다 결국 자살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비종교적인 것 같아도, 우리 마음은 사실 이 시대의 화려한 각종 우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며, 집값이 폭락하니 오랜 세월 우리가 숭배해 온 많은 우상이 사방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금 우리는 환상에서 깨어나서 분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짜 신들의 악영향에서 해방되는 길은 참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뿐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진정으로 당신을 채워 주십니다. 어그스틴의 고백처럼 “주여, 당신을 만날 때 까지는 참 안식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실망하게 해도 참으로 용서해 주십니다. 능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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