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이론/그리스도 중심적인 네러티브 설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wordlove 2024. 2. 18. 15:40

본문: 8: 30-39

명제: 어떤 피조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 선언적 명제

3. 제목: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1, 갈등: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감

26-30절에서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두 가지 확신의 토대를 말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기도할 말이 없을 때 성령이 하시는 일을 가리키고, 두 번째는 우리 삶의 모든 상황 가운데 절대주권을 지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확신은 오늘 본문 31-39절에서 바울이 보여 주는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으리오 ““ 로 끝을 맺는 뜨거운 질의응답의 기초가 됩니다. 이 단락은 817-18절에서 암시된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한 바울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모든 믿음의 싸움에 항상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면서 삶의 고난과 유혹에 맞설 수 있을까요? 그 첫 번째 답은 26절에서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 때에 나옵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거나,, 일생일대의 문제와 씨름하기도 하고, 아니면 자신의 잘못이나 실패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기도할 수 없는 바로 그때 성령께서 우리 기도를 도우십니다. 26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동하기에, 곧 아버지께 확신하고 나아가기에 우리 자신이 너무 약하다고 느껴질 때 성령이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도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답은 그리스도인들은 28절에서 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 28절의 선은 어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에서 좋은 결과 즉 성공과 축복 등을 말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고난이 왔을 때는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성화와 거룩함, 그리고 구원을 가져온다고 강조합니다.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결국에는 29우리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시는 ''이 다름 아닌 우리의 인격이 새롭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처럼 사랑스럽고, 고귀하고, 참되고, 지혜롭고, 굳세고, 선하고, 기쁨을 주고, 겸손하고, 관대하도록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우리 마음을 가르치시고, 겸손하게 하시고, 갈고닦으셔서 그리스도를 닮게 만드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29"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미리 정했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에 드러납니다. 이것은 놀라운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십니다. 모형이자 원형이신 당신의 아들을 가지신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다듬고, 윤내고, 녹이고, 매끄럽게 하고, 조각하고, 짜 맞추고, 주조하고, 형상을 빚어서 원형에 가깝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완벽한 틀 속으로 우리를 부어 넣으십니다. 본받게 한다는 것은 겉모습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닮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면 깊은 곳, 즉 안에서부터 밖으로 새롭게 빚어가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것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법적으로만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것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그 모습에서도 닮아가고 있습니다. 거듭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과 유전자를 받아서 벧후 3:18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삶의 모든 상황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과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의 형제와 자매로 다듬어 가십니다.

 

2. 갈등 심화: 영광스럽고 끊어지지 않는 고리

로마서 829-30절은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빚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묘사한 다섯 개의 능동적인 동사를 열거합니다. 이 동사들을 이해하는 열쇠는 모두가 같은 사람들을 지칭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사람 중 일부를 부르시고, 부르신 사람 중 일부를 의롭다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사람들을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 중 '일부' '대부분'이 아니라 항상 '그들 모두'를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신 일들입니다. “미리 아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영광스러운 목적지를 계획하셨습니다. 부르시고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때에 맞추어 당신의 계획을 실행하십니다.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당신의 계획을 완수하십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동사는 미리 아셨다입니다. 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의 앞날을 아시고,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과 앞으로 살게 될 사람들도 미리 하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미리 아셨던 사람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 말씀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누군가를 아신다"라는 것은 인격적으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마 7:23"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라고 하신 것은 그 사람과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리 알았다는 것은 미리 사랑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두 번째 동사는 미리 정하셨다입니다. 입니다. 미리 정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목적지를 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곧 미리 계획을 세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그와 함께 영화롭게 되는 것을 목표로 정하셨습니다. 세 번째 동사는 부르셨다 입니다. 로마서 828절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29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의롭다 함을 받은 자""영화롭게 된 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은 의롭다 함을 받고 마침내 영화롭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은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내면에 비추시는 성령 하나님의 조명인 셈입니다. 살전 1:4-5절은 이것을 완벽하게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바울은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고전 2장에서“2장에서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비록 바울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했지만 깊은 확신으로 응답한 사람들은 그들이 선택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설교를 통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네 번째 동사는 의롭다하셨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하여 우리를 법적으로 의롭고 흠이 없다고 선고하고 대우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의로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로마서 전체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8:30절에서 보아야 할 핵심은 의롭다 함이 따로 떨어져 있는 사건이 아니라 영원 전에 시작되어, 시간과 역사 속으로 침투한 후, 다시 영원에서 끝나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 및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30절은 하나님이 미리 알고 부르지 않으셨다면,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섯 번째 동사는 영화롭게하셨다입니다. 바울은 18-21절에서 이미 이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영광...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영화롭게 되는 것을 과거시제로 말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30절에 나오는 연결고리의 다른 동사들처럼 하나님이 틀림없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너무 확실해서 이미 일어난 일과 같은 것입니다. 영화로움에 이르는 연결고리를 어느 누구도 중간에서 끊을 수는 없습니다. 제임스 데니의 말처럼 이 모든 과정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동사인 '영화롭게 하셨다 헬라어에 한 번 일어난 분명한 역사적 사건을 의미하는 과거시제를 사용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신약을 통틀어서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가장 대담한 기대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에서 이것은 어떻게 보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들었을 때 부름을 받았고, 그 복음을 믿었을 때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그 연결고리를 거슬러 올라가서 창세 전에 하나님이 자신들을 미리 사랑하셨고, 의롭게 되도록 미리 정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는 하나님 안에 있는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을 영원히 누릴 것을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라면 이미 사랑받았고, 미리 정해졌고, 의롭다 함을 받았고, 이제 곧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3. 전환: 우리의 대답은 무엇인가?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오?"에서?"에서 바울이 묻습니다. 26-30절의 진리를 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다음과 같은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바울의 질문은 다섯 가지입니다. 31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전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요?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를 영화롭게 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한 아들까지 포기하셨는데, 왜 우리는 필요한 것을 받지 못할 것처럼 근심하는가요? 33누가 능히 고발하리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영화롭게 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하셨는데, 왜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고 용서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요? 34"누가 정죄하리오 ““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완전한 삶을 사시고 완전히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시는데, 왜 자신을 정죄하는가요?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이 마지막 이 질문은 사실 다른 모든 질문을 아우르는 최종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사람이나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는 모든 의심과 근심, 그리고 불안이 여기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편지를 처음 읽은 독자들이나 현대의 독자들도 주위를 둘러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환난, 곤고, 박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또한,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도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습니다. 44:22절을 인용한 36절의 묘사처럼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상적으로 죽음과 직면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박해와 대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놓을 수 있는 것은 과연 없는 것일까요? 바울의 대답은 '‘없다“입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37"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단언합니다. 어떠한 것도 30절에 나오는 연결고리를 끊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최악의 상황들을 통해서, 또한 최악의 상황들을 극복하면서 승리합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 “을“ 한 사람도 잃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의 선을 항상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역사 안에서 사랑과 절대주권으로 관여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떤 것도 39"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어떤 것도, 사망이나 생명이나, 영적인 존재도,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시간도,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어떤 것들도, 공간도,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나 주변에 있는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단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요컨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우리를 사랑하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삶의 고난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죄에도 당당하고 변치 않는 확신으로 맞서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만들기로 작정하셨는데, 글자 그대로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뒤엎을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실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여, 당신은 부르심을 받았는가? 당신 영혼 깊은 곳에 복음이 능력으로 임했는가? 당신을 의롭게 해 주길 하나님께 구했는가? 좋다! 위대한 하나님이 창세 전에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또한 하나님의 가족으로 영원히 당신과 함께 살기 위해 지금도 계획대로 어떤 실수도 없이 일하지 않으신다면 일어나지도 일어날 수도 없는 이것을 이제 깨달아라." 이 질문들의 목적은 우리의 불신앙을 깨뜨려서 우리가 은혜만으로 구원받았기에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살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놀랍고, 확고하고, 강렬한 논리로, 로이드 존스는 이것을 '이글거리는 논리'(logic on fire)라고 불렀습니다!

 

4. 대단원: 바울의 도전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도전합니다.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 생각해 보라! 두렵습니까? 그렇다면,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염려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죄책감을 느낍니까? 그렇다면,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저 받은 은혜와 의롭다 하시는 진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메마른 교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만일 당신이 강렬한 확신과 능력 가운데 살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제대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18-30절을 반복해서 읽고 깊이 묵상해서 그 진리대로 사는 것을 배우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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