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 3:1-5, 요 4:10-26
명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생수입니다.(평가적 명제)
제목: 복음이 누구에게 필요합니까?
갈등
두 인물이 등장입니다.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복음의 의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요 2 : 24-25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요 2:252: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자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을 다 아십니다.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은 인간의 샘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상반되는 캐럭트를 가진 인간이지만 동시에 공통점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문제는 무엇인지, 구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갈등 심화
먼저 요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땅을 떠나 갈릴리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려면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목이 말라 우물 곁에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습니다. 여섯 시는 우리 시간으로 정오 12시 즈음입니다. 팔레스타인은 아열대 기후라 낮 12는 너무 더워 일하지 않고 대체로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그 시간에 물을 길어 우물가에 왔습니다. 당시 여인들은 아침이나 저녁 서늘할 때 물을 기르려 오는 것이 상례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이 여자가 사람이 왕래하지 않는 가장 무더운 시간에 물을 기르려고 왔을까요? 이 여자는 지역 사회에서 교류가 없는 문제 있는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역사적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는 원수지간처럼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7절“예수께서 물 좀 달라 하시니” 당시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은 비정상이었습니다. 그것도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더더욱 비정상적이었습니다. 9절“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은 사회적 신분, 인종, 편견, 선입관에 구해 받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다아 가십니다. 이에 예수님은 10절“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나는 너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생수라는 말씀입니다. 이 연인이 15절“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 않게 하소서” 그러자 예수님은 참으로 황당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16절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이에 뿌루퉁한 목소리로 이 여인은 17절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쏘아붙입니다. 예수님은 17절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하시며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18절“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 그리고 지금 사는 남자도 너의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맞도다. 너는 남자를 통해서 네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려고 몸부림쳤지만 어떤 남자도 너희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 주지 못했다. 너는 잘못된 존재로부터 목마름을 채우려고 했지만 너는 실패했다. 내가 너의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줄 영원한 남편이다. 사람들은 부모 자식 돈 명예 결혼 등을 통해서 행복과 만족을 얻을 것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늘 환멸과 절망입니다. 왜요, 그들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니고데모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대표입니다. 요 3:1절“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는 산회드레인 공의회 7070명 중 한 사람입니다.. 우리 식으로 국회의원급의 고위 지도자입니다. 소위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절에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밤에 찾아왔을까요?? 그는 예수님에 대한 상당한 호감을 가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님은 유대의 지도층으로 의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식해서 밤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매우 예의 바르게 2절“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는 예수님을 향해 선생님!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압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대단한 분입니다. 그는 겸손하고 예의 바르며 진리를 사모하는 성향의 사람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이 정도의 겸손과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을 찾기는 오늘날 매우 힘듭니다. 성공한 사람의 특징은 교만합니다. 자기 성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진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이 진리요 신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향해 동문 서답 형식의 질문을 합니다. 3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당신은 선생님입니다 한수 가르쳐 주십시오 라는 겸손한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냉정한 답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 속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니고데모는 당연히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일성수 철처히 하고 있고, 십일조도 빠짐없이 하며, 가난한 자에 대한 선행도 하고 있으며, 도덕적으로 크게 험이 없는 깨끗한 삶을 살아왔기에,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천국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당연시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겠다는 자력 구원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너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너의 노력과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 난 것은 우리 노력이 아니고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스스로 태어난 사람도 없고 스스로 거듭난 사람도 없습니다. 은혜는 밖에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거듭난다라는 말을 개선한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정치꾼들이 이제 우리 당은 거듭나겠습니다. 그 말은 우리 당이 국민 눈 높이에눈높이에 부족하니 앞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게 개선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거듭남은 다릅니다. 니고데모, 네게 필요한 것은 윤리가 아니고 구원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너는 너의 성취와 행위의 개선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나의 삶에서 부족한 것은 윤리적 개선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삶을 살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이 바로 니고데모 같은 분류의 사람입니다.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 두 사람의 문제가 다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만족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만족을 얻고자 합니다. 니고데모는 보다 나은 삶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공통 부모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자신을 세우고자 합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선행 성취에 만족을 얻고자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어떻습니까? 많은 인생은 결혼을 하면 모든 행복이 저절로 굴러들어 올 것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과연 남편이나 아내가 내 모든 것을 다 만족 시킬 수 있는 행복을 갖다 줍디까? 남편, 아내라는 인간이 하나님만이 줄수 있는 행복을 줄 수 있느냐 말입니다.
3. 전환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니고데모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요 3:16-18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니고데모, 네가 영생을 얻기를 원한다면 나에게 오라, 나의 사랑으로 내가 너를 대신 죽는 방식으로 너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내가 너를 대신 죽게 될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네 남편을 데려오라는 예수 님의 질문에 갑자기 화제를 바꾸어 우리 조상들은 사마리아에서 당신의 조상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는데요.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가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 님이 23절에서 “참으로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그러자 이 여인은 25절“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이때 예수 님은 폭탄선언을 합니다. 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 내가 너의 영혼을 만족하게 해 줄 영원히 사랑하는 남편이니라. 나는 너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며 희생하는 남편이다. 이 여인은 그 순간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찾고 기다리고 계신 그분이 바로 자기 앞에 계십니다. 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그분을 오늘 만났습니다. 이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그분을 만나 보세요. 그분은 우리가 기다리던 바로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이 여인은 더 이상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를 의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여인은 자신의 과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왕따 당하고 있었고 누구와도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여인은 자기를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 여인은 자신을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그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나를 찾아오셔서 내 모든 영혼의 목마름을 다 해결해 주신 이분을 여러분도 만나 보세요.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니고데모도 이제 사람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변화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밤에 사람을 의식하여 자기 신분에 지장이 없도록 몸 사렸지만 그 후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요 19: 38-40”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요 19:3919: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요 19:4019: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제자들은 다 도망갔고 모두가 유대인을 의식하여 쉬쉬하고 있었을 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빌라도 총독을 만나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가지고 침향과 몰약 향품과 세마포로 시신을 쌌서 무덤에 묻었습니다. 니고데모도 더 이상 사람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 배경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침향과 몰약 향품 세마포는 당시 왕의 장례식에 사용하는 용품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두 사람은 자신의 지위 성취 신분과 과거에 관심이 없습니다. 두 사람 다 자기 의식의 노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자기 의를 믿고 있는 니고데모에게는 너는 은혜가 필요하다 내가 너의 의가 되어 주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죄 의식으로 자신은 무가치한 자라고 늘 억눌려 살아왔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목마른 연약함을 통해서 이 여인을 찾아왔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내가 목마르다고 외쳤습니다. 이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 자신이 친히 목마름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하시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사랑에 목말라 그분은 내가 목마르다고 외쳤습니다. 목마름에 허덕거리는 우리 모든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목마르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시는 자는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4. 대단원
마르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20세기 최고의 설교자입니다. 영국분으로 본직이 의사였습니다. 의사로서 20대에 최고의 명예인 영국 왕의 주치의 조수가 되었습니다. 이분이 세상에서 의사로서 자신의 이름을 빛낼 수 있는 명예를 버리고, 나이 27세에 워일즈 에버라본 탄광촌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마을에는 노동자가 많았고 난봉꾼이 많았습니다. 이 마을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 베단도 의사였는데 의사를 포기하고 남편 따라왔습니다.. 아내 베단의 간증입니다. 남편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인 복음을 선포하자 술주정뱅이고 난봉꾼들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많은 회심자가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지만 베단 여사 자신은 이 부흥의 역사에 대하여 무덤덤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모태 신앙인으로 주일성수 잘하고 예배 잘 드리는 신앙인으로 살았으니까? 자신는 달리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회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큰 기쁨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난봉꾼으로 술주정뱅이로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기쁨으로 사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런 기쁨을 한번 누려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차라리 나도 저런 사람처럼 죄인으로 살다가 회개하고 기쁨을 누릴 수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자신도 남편 로이드 목사님이 전하는 복음을 통해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임과 죄 용서함의 은혜를 깨닫고 복음이 주는 큰 평안과 기쁨을 얻었다는 간증입니다. 여러분도 복음이 주는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아십니까? 복음이 누구에게 필요합니까? 자신의 선한 윤리의식이나, 자기의 죄인 됨에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지 마십시오. 나의 어떤 사람됨에 상관없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믿으신다면 이 줗으신 예수님을 전파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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