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이론/그리스도 중심적인 네러티브 설교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신다

wordlove 2023. 12. 3. 15:15

1. 본문: 벧전 1:13-25

2. 명제: 우리는 거듭나는 순간 믿는다. 선언적 명제

3. 제목: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신다

 

1. 갈등: 주님의 주권적 은혜

요 3:3절에서. 그런데 거듭남과 관련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거듭남이 우리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자신이 태어날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듯이 우리가 자신이 거듭날지를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자신의 죄와 허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거듭나야 하며,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자신을 거듭나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사모하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거듭나기 전, 우리는 죄와 자기 높이기를 소중히 여겨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지 못합니다. 우리는 타락한 인간 본성의 뿌리에서 거역이 몸에 배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무엇보다 높이 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 속에 눌러앉은 진짜 악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영적으로 돌처럼 굳었고 죽은 상태인 것은 우리 탓입니다. 예수 님은 우리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기적을 일으켜 우리에게 영적 새 생명을 주셔야 합니다. 죽어 있는 우리는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진리를 최고로 갈망하는 귀가 필요하며,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시는 구원을 아름답게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우리가 거듭나는 길은 성령께서 믿음을 통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함으로써 우리에게 영적 새 생명을 초자연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풍성한 긍휼과 큰 사랑과 주권적 은혜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때,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킴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십니다. 요일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이와 관련된 우리의 첫 경험은 예수 님을 믿는 믿음이며, 새 생명이 우리에게 이 믿음을 줍니다. 거듭남과 믿음 사이에는 시간적 간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거듭나는 그 순간 믿습니다. 불이 있으면 열이 있듯이, 새 생명을 얻는 순간 믿음도 생겨납니다.

 

2. 갈등 심화: 영원한 생명

그렇다며,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까? 우리는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거듭남에 전혀 참여하지 못합니다. 예수 님이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 계실 때, 나사로는 자신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는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었습니다. 나사로가 아니라 예수 님이 새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43절에서 예수 님은 죽은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다음 절은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나사로는 자신의 부활에 참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되게 하십니다. 나사로 가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사로에게 일어나라고 명하시는 순간, 나사로 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새 생명을 주시는 순간 우리는 살아납니다. 성령께서 믿음을 주시는 순간, 이런 이유로, '우리는 어떻게 거듭나는가?'라고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둘째,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벧전 1:3-25절은 이 질문에 세 가지로 답합니다. 첫째, 3절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 거듭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둘째, 23절은 하나님이 살았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또는 15절이 말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셋째, 18절은 하나님이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우리를 대속하셨다고 말합니다. 셋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의 불멸성을 언급합니다. 3~4절을 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은 거듭남을 통해 우리에게 단순히 새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려 하십니다. 3절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우리가 얻는 새 생명에 대한 소망이 강조됩니다. 이 소망은 살아 있으며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소망은 '썩지 않을 유업을 얻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바로 이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거듭남을 통해 얻은 새 생명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다음으로, 18~19절에 나타나는 같은 강조에 주목하십시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된 것이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지불된 속전은 19절에서 그리스도의 보혈이며, 그리스도의 보혈은 지불될 수도 있었을 덜 귀한 은금과 대조됩니다. 18절에서 은금이 덜 귀한 이유는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핵심은 예수 님이 자신의 피를 주고 대속하신 새 생명은 다시 속박될 위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님이 우리의 새 생명 거듭남을 위해 지불하신 값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험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며, 그 가치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셋째로, 23절도 불멸성을 동일하게 강조한다는 데 주목하십시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한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 씨는 없어지지 아니하며, 말씀이 낳고 유지하는 생명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강조점은 우리가 거듭나서 산 소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때 우리 안에 창조하시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며, 없어지지 않는 생명입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 안에 들어오는 새 본성은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거듭남에 관해 강조하는 점입니다. 나는 베드로가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고난이 그의 베드로전서의 전체적인 정황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에 굴복하지 말라. 고난이 당신에게 육체의 생명을 빼앗을지라도 거듭남을 통해 얻은 생명은 절대로 빼앗지 못합니다. 거듭나므로 얻은 생명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3. 전환: 대속과 부활, 그리고 부르심

다시 말하자면 거듭나게 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벧전1:18~19" 너희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된 것이니라", 여기서 거듭남과 관련된 핵심은 속전이 지불되지 않으면 노예 신분의 죄인들이 새롭고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악 된 방식에 사로잡힌 노예 신분에서 속량 받지 못하면 멸망하고 맙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 자신의 진노를 받게 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속전을 지불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거듭남을 가능하게 하는 바위처럼 견고한 역사적 기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고 믿음을 일으키시며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근거로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 님은 막 10:45 절에서"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리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합이니라." 성육신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 “.“ 이 일은 우리처럼 자격 없는 죄인들에게 새 생명을 은혜의 선물로 값없이 주기 위한 근거로써 반드시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거듭남은 영원한 생명의 선물이기 때문에 속전은 은금과는 달 리 없어지지 않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무한히 귀하므로 절대로 속량 능력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얻은 생명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듭남을 일으키는 방법은 영원한 생명을 위해 대속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일어나야 했던 객관적이며 역사적인 둘째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벧전 1: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듭남을 일으키시는 둘째 방법은 예수 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죽은 마음을 제거하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도록 믿음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실 때 일어납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님과의 연합을 통해 새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 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셔야 합니다. 앞서 보았듯이, 거듭남은 성육신 이전의 하나님의 아들과 연합할 때가 아니라,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일어납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얻는 새 생명은 역사적 예수의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않으면 우리가 얻을 새 생명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거듭남을 일으키시는 둘째 방법은 예수 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셋째 방법은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벧전 1:14-15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돼라.” 베드로는 과거에 우리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이제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부르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속량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부르셨을 때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면, 이러한 부르심을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사람을 향한 일반적인 부르심과 구분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23-25절을 숙고해 보십시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거듭남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일어납니다. 25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거듭나지는 않습니다.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부르심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일반적인 부르심 즉 전파된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이 영적으로 죽은 모든 듣는 자의 귀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모두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살아나 믿음을 갖습니까? 왜 보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눈을 뜨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귀가 열립니까? 신약성경은 이 질문에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답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23절에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썩지 아니할 씨로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으로 거듭납니다. 복음은 모두에게 전파되며, 거룩한 씨가 어떤 사람들 속에 심깁니다. 이것이 거듭남을 말하는 한 방식입니다. 거듭남을 말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어떤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은 복음이 전파될 때 모두가 표면적으로 받는 일반적인 부르심과 다릅니다. 오히려 이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의 내적이며 유효한 부르심입니다. 예수 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주신 부르심입니다. 예수 님은 죽은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11:43"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심은 자신이 명한 대로, 선택한 대로 이룹니다. 이것이 복음이 전파될 때 모두가 듣는 외적이며 일반적인 부르심과 내적이며 유효한 부르심의 차이입니다. 벧전 2:9, 5:10 절에서 내적 부르심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창조적이며 멈출 수 없는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귀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내적 부르심은 보지 못하는 마음의 눈을 열고, 듣지 못하는 마음의 귀를 열며, 그리스도께서 가장 귀중한 분으로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자유롭고 간절하게 그리스도를 보호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 우리를 부르실 때 하시는 일입니다. 내적이며 유효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갖는 특별한 능력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본문은 고전 1:22-24 절일 것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모두가 복음을 듣습니다. 유대인도 듣고 헬라 인도 듣습니다. 그러나 어떤 유대인들과 어떤 헬라 인들은 복음에 담긴 뭔가를 경험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더 거리끼거나 어리석은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대신 이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로 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창조적인 부르심이 이들의 눈을 열었고, 그래서 이들은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실제로 능력과 지혜로 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셋째 방법입니다.

 

4. 대단원: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자신의 영광의 빛을 복음을 통해 우리 마음에 비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화이신 그리스도를 보화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당신 속에서 하신 일을 아십니까? 당신은 없어지지 않을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아 영원한 산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나사로처럼 사망에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보화이신 그리스도를 보화로 보았습니다. 당신은 거듭났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았습니다. 삶이 힘겨울 때 롬 8:28절을 적용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본 것 때문에 이 말씀이 새로운 능력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당신이 부르심을 받았다면, 모든 것, 어려운 일, 힘든 일, 선한 일들이 다 합력하여 당신에게 선을 이룹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겸손히 들어십시오. 아들아! 딸아! 나는 너를 사랑하여 너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십자가에서 받았다. 그리고 너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다. 나를 너의 구세주와 하나님으로 믿으면 나는 너에게 들어가 나의 영원한 부활 생명을 주겠다. 나에게 오지 않겠느냐! 이 주님의 부르심에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십시오. 그리스도를 참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며 믿으면, 하나님의 진노는 사라지며,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영원한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시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