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마 2 : 1-12
2. 본문 요약: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을 경배하기 위해 왔다고 전하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 헤롯왕이 박사들을 불러 별에 대해 상세히 묻고서는, 가서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자신도 경배하기 위해 가기 위해 알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꿈의 지시대로, 헤롯왕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자기 고국으로 돌아갔다.
3. 주제: 왕이신 아기 예수님 맞이하는 사람들
4. 테마: 왕이신 아기 예수님 맞이하는 사람들의 자세
5. 명제: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다양하다. 평가적명제
6. 목적: 왕이신 주님께 진정 경배드리는 신앙이 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7. 질문제기: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세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8. 중심단어들: 자세들, 태도들
9. 전환 문장: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다양하다.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세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0. 대지
1) 사모하는 자세입니다: 이방인
2) 방관하는 자세입니다: 종교인들
3) 두려워하는 자세입니다: 헤롯왕, 일반 백성
11. 제목: 왕이신 아기 예수
1, 갈등: 동방 박사가 별을 따라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리기 위해 옴. 예수님의 탄생 연대를 기준으로 기원후라는 AD와, 기원전이라는 BC로 역사를 나눕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이스라엘의 통치자인 헤롯왕은 BC4년경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탄생은 AD 1년이 아니고, BC 4년경으로 계산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인류 역사를 갈라놓는 위대한 사건이, 약 2000년 전 이스라엘 땅에서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참 왕이 탄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왕의 영광스러운 탄생을 제일 먼저 경배드린 사람은, 전혀 이외의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들도 아니고, 구주의 탄생에 대한 해박한 성경 지식을 가졌던 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아니었습니다. 이 의외의 인물 그들은 누구입니까? 페르시아 땅에서 별을 연구하는 점성술사였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동방 박사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대 점성술사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천문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요. 당시에는 왕의 자문 역할을 하는 정치인이요. 그 시대의 엘리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이 점성술사들이 별을 연구하다가 이상한별을 발견했습니다. 자신들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아별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세상을 구원할 참 왕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왕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구약 성경 민 24:17에 나옵니다. 민 24:17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이 메시아별을 야곱의 별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홀이 이스라엘에서 나오며 여기 홀은 왕의 지팡인데 왕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세상을 구원할 참 왕이 오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페르시아 점성술사들이 이스라엘 나라에서 세상을 구원하실 참 왕이 나오실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이방 사람들이, 어떻게 성경에 나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여러분, 구약 성경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 선지자가 자기 조국 유대가 바빌론에 의해 망할 때 포로로 끌려가서, 바벨론 나라의 정승 반열에까지 오릅니다. 바빌론의 왕인 느부갓네살 왕의 신임을 얻은 다니엘은, 바벨론 나라의 점성술사들을 관리하는 직책까지 맡았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기에 그는 분명히 별을 연구하는 점성술사들에게, 이 성경에 나오는 메시아별을 소개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분명 장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실 구세주에 대해 전도했을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이 성경의 메시아별에 대한 사실이, 그 후 여러 시대를 거쳐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페르시아의 동방 박사들에까지, 전해졌을 것이라는 유력한 설이 있습니다. 어느 날 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든 메시아별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참 왕이 탄생한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그들은 흥분했습니다. 그 흥분과 감격이 메시아별을 따라 집을 떠나 강 건너고 사막을 지나, 긴 여행 끝에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이가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저 동방에서 별을 보고 왕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이 소식을 듣는 모든 백성이 다 기뻐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왕의 탄생에 대한 소식을 들은 헤롯왕과 예루살렘사람들이 기뻐하기는커녕 웅성웅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왕이 오시면 지금 폭군인 헤롯왕은 어떻게 되는가? 정치가 골치 아프게 생겼어! 신구 권력 투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온갖 추측들이 나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당황한 사람은 물론 현재의 왕인 폭군 헤롯왕입니다. 자기의 정치적 맞수가 될지도 모르는 새 왕이 태어났다니 보통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즉각 성경을 잘 아는 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가 태어날 장소가 어디인가? 물었습니다. 종교인인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성경 미가서 5:2절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16km 떨어진 지점인 옛날 다윗왕의 고향인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라고 정확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헤롯왕이 동방 박사들에게 이상한별이상한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는, 베들레헴에 가거든 나에게도 알려주시오. 나도 새 왕에게 경배하고 싶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마침내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따라, 왕이 태어난 집을 찾아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드리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꿈을 통해 헤롯왕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왕의 오심을 제일 먼저 축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몰랐던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지 않습니까? 이처럼 천국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수가 많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2. 갈등심화: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에 대해 소식을 듣고 맞이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다양함. 참 왕이신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왕의 오심을 사모하는 자세를 취한 동방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보고서는 즉각 순종합니다. 그리고는 그 왕을 만나기 위해 큰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집을 떠나 먼 길을 여행했습니다. 여행 중 얼마나 많은 불편을 만나겠습니까? 그들은 수많은 역경을 감수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누릴 큰 특권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자기 고국에 그냥 있었다면 편안하게 호의호식하며 즐길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과 오랫동안 헤어져야 하는 고통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생명의 위험도 각오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악조건 가운데서도 그들은 구세주에 대한 사모함이, 모든 어려운 장벽을 뚫고, 아기 예수께 경배하도록 발걸음을 재촉했던 것입니다. 그다음 반응은 왕의 오심에 대해 방관하는 자세를 취한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왕이 태어날 장소가 어디입니까?라는? 헤롯왕의 질문에 예! 구약 성경 미가서 5:2절입니다 라고 분명히 대답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지식적으로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 왕의 오심에 대해 진정 기뻐하지 않았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든 참 왕이 오셨다는 소식을 진정 믿었다면,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왕을 찾아 경배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왕의 오심에 대해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였을 뿐입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진정 믿지는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 교인들 가운데도 많습니다. 왕의 오심에 대한 또 다른 반응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 두려워하는 자세를 취한 헤롯왕과 일반 예루살렘사람들이었습니다. 헤롯왕은 그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메시아 즉 참 왕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기쁨 대신 마음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음에 혼돈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의 왕권을 노리는 자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일반 백성들도 별 차이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새 왕이라고 별수 있겠나 왕이란 인간은 다 싫어. 왕이라는 자는 다 똑같해.. 차라리 왕이 없는 세상이 낫지라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릅니다. 헤롯왕은 그 순간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새로 오신 참 왕을 죽일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는 거짓말을 동방 박사들에게 합니다. 나도 경배드리고 싶으니 왕을 찾거든 어디에 있는지를 나에게 알려 달라고 거짓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든 동방 박사들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는 즉각 자신의 왕권에 대한 위협을 느껴, 베들레헴 근처에서 태어난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자신의 권력이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여, 그는 참 왕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오히려 그 왕을 대적하는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어린 생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 헤롯왕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해 죽고 말았습니다. BC 4년경이었습니다. 지금도 왕이신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이처럼 다양한 반응을 합니다. 여러분은 참 왕이신 예수님이 오심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하십니까? 무관심합니까? 귀찮게 여깁니까?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합니까? 무서워 합니까? 기쁨으로 맞이합니까?
3. 전환: 저희가 그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여러분!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 무엇이 이처럼 다양한 반응을 낳았을까요? 종교인, 헤롯왕, 일반 백성들은 구원의 왕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왕이 과연 누구신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헤롯왕과 일반 사람들은 왕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새 왕이 오면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예수 믿으면 손해 보는 것은 아닌가? 예수 믿으면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것 아닌가? 예수 믿으면 죄도 마음대로 못 짓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며, 나는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 이런 생각으로 참 왕에 대해 거부하는 것입니다. 대신 참 왕이 아닌 썩어질 우상을 어떤 사람은 돈, 권력, 명예, 지식, 자식을 자신의 왕으로 우상으로 섬깁니다. 이 말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데 참 주인은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왕이신 예수님을 싫어합니다. 반면 종교인들은 왕의 오심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는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오는 날 교회 오래 다니다 보니 들은 것은 많아 성경 말씀을 지식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진정 믿지를 않은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믿음이란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믿음이지 마음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 왕이 당신의 주인으로 오셨습니다. 당신이 경배하고 순종해야 할 주인이십니다라고 말하면 귀찮아합니다. 그냥 죽으면 천국 보내주시고, 이 땅에서 복만 주시죠. 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말씀을 별로 환영하고 싶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두렵고 불편하고 귀찮아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주인이라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눅 9:23에서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은 자기 성취가 아니라 자기 부인을 먼저 요구합니다. 복음은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 주세요.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구원하소서. 예수님을 나의 주권자, 나의 왕, 나의 주인으로 믿습니다. 주님! 내 삶을 다스려 주옵소서. 나 자신과 나의 바람을 내려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순종하겠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눅 18장에서 한 부자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왔서는,,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돈으로 구제해야 구원 얻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부자 관원에게 말씀하신 의도는 이 사람이 진정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알고 믿는지를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 사람이 자신을 부인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님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얼굴로 구원받지 못한 채 돌아가버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주인은 재물이었습니다. 반면 동방 박사들은 왕이 누구신가에 대한 진지한 구도의 자세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실 참 왕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참 왕이신 예수님은 자신들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세상 왕과 다른, 자신들을 지으신 전능하신 왕이시오. 자신들을 구원할 왕이시오. 평화의 왕이시오. 사랑의 왕이시오. 선하신 왕이시오. 영원히 함께하실 왕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참 왕이신 아기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정확히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오늘 말씀은 아기 예수님은 우리가 진정 경배드리고 섬겨야 할 참 왕으로 나의 주인으로 오셨음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왕과 다른 우리가 진정 경배해야 할 왕이십니다. 그래서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보자 엎드렸습니다. 단순한 아기로 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진정한 구원의 왕으로 하나님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왕에게 가장 귀한 예물로 드렸습니다.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귀한 것을 드림으로, 왕에게 진정한 감사와 충성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자신들부터 그만한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그들은 믿었습니다. 성탄절은 우리가 진정 경배드리실 참 왕이 오신 날입니다. 참 왕이신 예수님께 나의 가장 귀한 것 감사와 사랑과 충성과 헌신으로 경배드리면서 앞으로 살겠다고 결심하는 날입니다. 아멘!
4. 대단원: 하나님의 인도를 받음.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동방 박사들이 마음으로 왕이신 예수님께 경배드리자, 하나님은 이들을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복된 인생으로 축복하셨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이 친히 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헤롯에게서 돌아가지 말라.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우리가 구주이신 왕을 높이면, 하나님이 나를 높이심을 아십니까? 구주이신 왕을 내가 낮추며, 왕이 내 인생을 낮춥니다. 여러분이 존귀히 여김을 받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구주이신, 참 왕이신 예수님을 존귀히 여기십시오. 이 왕에게 진정 엎드리면, 왕은 여러분을 더 높이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이 왕을 왕답게, 하나님답게 섬기십시오. 그러면 이 왕이 여러분을 하늘나라의 왕자처럼 공주처럼 귀하게 대우하실 것입니다. 이 구원의 왕이신 예수님을 믿고 섬기면, 이 왕이 여러분을 진정 쓰임 받는 복된 인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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