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12:1-8
2. 명제: 복음은 교회 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합니다. (선언적 명제)
3. 제목: 영적 예배/산 예배
갈등 심화: 지난 시간 말씀을 요약하며 시작하겠습니다.
롬 12장은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는 전환점입니다. 바울은 “그러므로”로 그 서막을 엽니다. 바울은 롬 1-11장까지 설명한 복음을 토대로 예수님을 믿어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12장 1-2절은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먼저 순종하는 동기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동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복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충분한 이유는 은혜에 대한 감사뿐입니다. 이어서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한 것을 바침으로써,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는 고백입니다. "산 제물“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전부를 내맡기는 것입니다. 능동적으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기꺼이 순종하겠다는 것이고, 수동적으로는 하나님이 우리 삶에 허락하신 것은 무엇이든 기꺼이 감사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순종할 수있도록 우리의 태도를 끊임없이 새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어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마음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가 말하는 변화는 겉으로 어떤 것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이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골 3:16절을 통해 볼 때 이 말은 우리 안에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풍성하게 하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온전한 삶의 모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동기를 부여해 줍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 마음을 바꾸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이유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기게 하기 위해 영적 예배 즉 합리적인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긍휼을 생각해 보면 우리 전부를 바치는 것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입니다. 만일 자신의 일부만을 성의 없이 바친다면 그것은 곧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주의깊게 보고 그분이 하신 일을 제대로 듣는다면 반드시 얼음 같은 우리의 영혼이 녹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은 우리 마음이 기쁘게 되어 자신의 전부를 바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비를 묵상하십시오. 여기 자비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자비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행해진 특별한 자비들을 지칭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거룩해지고 싶은 관심이나 열정이 부족하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대한 깊은 묵상으로 타오르게 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하게 살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멈춰 서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우리를 위해 전부를 내어 주신 예수님께 우리가 보일 수 있는 합리적인 반응은 그분께 우리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것은 무례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분명하게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만큼만 우리를 위해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 주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지각 있는 행동입니다! 셋째,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합니다. 세상이나 유행하는 형식적인 도덕적 규범을 본받지 말고, 오히려 속사람부터 새롭게 됩니다. 거듭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시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정기적으로 묵상할 때 가능합니다.
2. 갈등 심화: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변화를 받게 되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 바울은 3절"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한다.” 곧 거만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의 위험성에 대한 우리 문화의 온갖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위험한 것은 이기심 내지는 자기중심성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와 역량, 성실과 능력을 과장하기 쉽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바울은 3절"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지헤롭게 생각하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지혜로움'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래 술 취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지혜롭게 "란 아주 정확하고 실제적으로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겸손해지라든지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높게 여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뛰어나거나 잘할 수 있는 일을 인정할 때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 우리는 자신을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말고 자신에 대해 정직해야 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이 주시는 다양한 은사들을 열거합니다. 4-5절“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열거한 은사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롬 12장에서 성경의 모든 은사를 소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6절의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 예언은 계시받은 메시지를 하나님처럼 전하는 은사는 아닐 것입니다. 신약 성경의 어떤 곳에서는 사도행전 11장 28절에 나오는 아가보처럼 예언자가 마치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지만, 고전 12:28절에서 바울은 예언자를 사도들보다 아래에 둡니다. 고전 12:28”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여기에서도...“ 바울은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하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믿음의 분량대로'라고 해석하지만 원래 헬라어로는 '믿음과 일치되게'라는 뜻으로 '기준'을 가리킵니다. 기독교의 교리와 다르게 예언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왜 이런 규정이 있어야 할까요? 아마도 '예언'에 또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롬 12:6절에서는 예언이 오늘날의 설교로 보는 것이 마탕 하다고 말합니다. 섬기는 일은 7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헬라어로 디아코니아인데, '실제적인 봉사'를 의미합니다. 섬기는 일에 은사가 있는 사람은 실무와 행정에 능합니다. 이들은 협업에 능해서 혼자 주목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7절의 가르치는 일은 진리를 가르칠 때 납득이 되도록 명료하게 설명해 주는 은사입니다. 8절에 위로하는 일은 원래 헬라어로 파라칼레오인데 '나란히 오다'라는 의미입니다. "위로하는 일”도 좋은 번역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다른 사람들을 지지하고 고무하는 현대적 의미의 '카운슬링'도 포함됩니다. 위로하는 사람들은 조언하고 지지하고 영접하는 다양한 일들을 통해 사람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8절 구제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과하게 주는 것을 즐기기도 하지만 대개는 지혜롭게 베풉니다. 이들의 관대함은 영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8절의 다스리는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게 만드는 은사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이루도록 고무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8절의 긍휼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특별히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약한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중독된 사람, 그리고 나이 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마음이 감동된 사람들입니다.
3. 전환: 도리어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할 때 먼저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의 분량"을 "믿음의 양"이라고 해석합니다. 곧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믿음을 주셨기에, 우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는 우리가 가진 믿음의 양에 달려 있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로마서의 대의에 어긋납니다. 더욱이 '분량'의 헬라어인 메트론은 양이 아니라 측량의 기준을 뜻합니다. 따라서 3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너희 모두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믿음이 주어졌다. 바로 그것으로 너희 자신을 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같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다양한 배경이나 능력 등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공평하게 사랑하십니다. 복음은 우리가 자신의 본래 모습보다 더 높게 평가하지 않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 죄인들입니다. 또한 복음은 자신을 본모습보다 더 낮게 평가하지 않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평가를 내리시는 하나님 눈에 가장 사랑스럽고 존귀한 구원받은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복음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합으로 우리 자신을 평가하라는 명령인 셈입니다. 우리 자신을 평가할 첫 번째 "분량"은 우리가 믿는 복음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각자 독특한 은사들과 능력들을 가졌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우리는 복제품이 아닙니다. 복음 앞에서는 모두가 같지만 각자가 다양한 능력들로 서로를 섬깁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엡 2:10절"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독특한 인격과 성품, 이력 그리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대로 각 사람은 특별한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5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몸처럼 교회도 상호 의존하고 서로 지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교회의 지체됨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고전 12:17-21절"만일 온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을 보십시오. 이렇게 몸의 비유는 거듭 우리가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보다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교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필요합니다. 혹은 과소평가하지 도 마십시오. 교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우리가 필요합니다. 6절"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우리는 무엇보다 이러한 은사들을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의롭다 함을 주시는 데서 뿐 아니라 각자의 은사에서도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은사들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가 속한 몸을 위해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두 번째 방법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속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4. 대단원: 당신의 은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자신에게 있는 은사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세 가지 방법을 알려 줍니다. 첫 번째, 자기진단입니다. 바울은 은사에 대해 3절"지혜롭게 생각하라 “고“ 권고합니다. 첫째, 은사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살펴봅시다. 우리의 감정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자문해 봅니다. "나는 어떤 일을 즐거워하는가? 어떤 종류의 섬김에 끌리는가? 그 일이 만족스러운가?" 둘째, 어떤 일이 나를 필요로 하는지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7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 나는 어떤 문제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가? 나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가? 나에게는 카운슬링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가? 교회가 너무 무질서하다고 느끼는가? 셋째, 내가 잘하는 일들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을 잘하는 편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는가?"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분별하기 위해서 당신을 잘 아는 사람들의 의견을 구해 보십시오. 은사를 분별하는 두 번째 방법은 경험입니다. 6절에서 바울은 은사가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라고 합니다. 대개 섬기기 전에는 자신에게 어떤 은사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섬기면서 자신의 은사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섬기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있는 은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재능들'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섬김을 해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것을 6절에서 사용하고, 8절에서 그것을 실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은사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면 교회의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대로 은사를 나누어 주시기 때문에, “나는 다른 은사를 원해" 혹은 "내 은사를 다르게 사용하고 싶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능력과 은사를 사용해서 그분을 섬기는 것이 참 영적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을 때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교회 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합니다. 이 일을 이루기 의해 우리는 먼저 복음 즉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으로 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당신의 은사가 무엇입니까? 그 은사를 가지고 교회에서 사용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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