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이론/그리스도 중심적인 강해 설교

혼인 잔치 비유

wordlove 2025. 3. 2. 14:40

1. 본문: 마태복음 22:1-14

2. 명제: 초청받은 자는 많되 택함 받은 자는 적다. 예언적 명제

3. 제목: 혼인 잔치 비유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주간, 즉 십자가를 앞두고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논쟁하시면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왕이 아들의 결혼 잔치를 열고 많은 사람을 초대했지만, 초청받은 자들이 다들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거리에 나가 누구든지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예복 없이 왔다가 쫓겨났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합당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배척하며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천국 잔치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과 인간의 반응, 그리고 선택받은 자들의 특징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비유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고, 대신 이방인들이 복음의 초청을 받게 될 것을 예고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매튜 헨리 주석은 이 비유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 역사적 전환점을 설명하는 강력한 비유"라고 말합니다. 또한 칼빈 주석에서는 "이 비유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인간의 선택을 초월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거부와 책임도 함께 작용함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합니다. 오늘 말씀은 초청받은 자는 많되 택함 받은 자는 적다고 말씀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초청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22:1-7을 읽어보십시오. “22: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 22:2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22:322: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마 22:422: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마 22:522: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마 22:622: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마 22:722: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질문에 대한 답은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비유에서 왕이 아들의 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이 초청은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을 상징합니다. 1-7절에서 "혼인잔치"는 성경에서 종종 메시아 왕국의 축제로 비유되었습니다.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2"보라 내가 내 잔치를 준비하였노라" 여기 우리 성경에 베푼 즉 준비하다는 헬라어 동사는 단순 과거로 모든 준비가 완료 되었다는 뜻으로, 이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이미 완성하셨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초청받은 자들은 이를 거부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여기 "거절하다" 이는 지속적인 거부를 의미합니다. 이 것은 "유대인들의 완고함과 지속적인 불순종"을 드러냅니다. 스펄전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을 반복적으로 거절하는 것은 결국 파멸로 이어진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적극적인 반항과 거절이다"이란 뜻입니다. 이사야 55:1-3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 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2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 55:355: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오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5절을 보십시오. 그 때마다 각자의 일상에 매몰되었고 그들의 일상을 앞세우며 온갖 핑계를 앞세우며 거절합니다. 제일 많이 하는 핑계가 저 오늘 바빠요.” 오늘 약속이 있어 못 갑니다.” 6절을 보십시오. 심지어 초청을 전하는 종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러자 왕이 마침내 7절을 보십시오. “이에 왕은 노하여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창세기 6-7장에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시고,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방주에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노아의 초청을 무시하고 비웃으며, 그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상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홍수로 인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사랑하사 예수님을 주시고 믿으면 멸망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시는데 인간은 거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초청을 하십니다. 이 초청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값없이 베풀어진 잔치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는 완악한 본성을 가집니다. 자신의 일(농사, 사업 등)이 더 중요하다며 복음을 거절하는 것은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로이드 조선 목사님은 이것이 인간의 전적 부패를 보여준다고 말씀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구원을 거부하는 무리들이 여러 유형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외면하거나 거부하는 자들을 대표합니다.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완고와 우유부단입니다. 기독도가 멸망의 도시를 떠나 천성을 향해 가려고 할 때, 그의 친구인 완고와 우유부단이 등장합니다. 완고는 이름 그대로 마음이 굳어져서 기독도를 조롱하고,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며 끝까지 세상에 머물겠다고 합니다. 그는 신앙의 길을 완전히 거부하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우유부단는 처음에는 기독도의 말을 듣고 함께 길을 떠나지만, "절망의 수렁"에 빠지자 곧 낙심하여 다시 돌아갑니다. 그는 신앙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고난이 오면 쉽게 포기하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말쟁이는 말로는 신앙을 잘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삶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무지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구원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천국에 가려고 합니다. 그는 좁은 문을 거치지 않고 순례자의 길에 섰지만, 결국 마지막 심판에서 하나님께 거절당합니다. 무신론자였다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했던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의 공통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특별히 눈에 띄게 뭔가를 추구하지 않고, 그냥 일상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야. 이 사람들은 자기 삶에 대해 깊게 고민하거나, 뭔가 큰 변화나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 않거든. 쉽게 말해, 특별한 열정이나 관심 없이 그냥 '그냥 괜찮아' 하면서 살다가 결국엔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라고 편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청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지만, 이를 거부하면 심판이 따릅니다.

 

다음은, 예복을 입지 않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22:8-12에서 답을 찾으면 형식적 신앙인입니다. 9절에서 왕은 거절한 자들을 대신하여,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초청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여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복"은 구약에서 의로움과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이 예복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존 칼빈은 예복을 믿음의 열매 즉 삶의 변화, 경건함이라 해석했습니다. 칼빈은 예복을 단순히 그리스도의 의로만 보지 않고, 믿음에서 나오는 경건한 삶과 변화된 행위를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초청을 받아 혼인 잔치에 온 것 즉 은혜의 초청을 받은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과 그것을 증명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뿐만 아니라, 경건한 삶을 살도록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헛되이 받은 자이다.”라고 말합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신앙을 말로는 고백했지만, 실제로 회개와 변화가 없는 사람을 뜻한다고 봅니다. 매튜 헨리는 예복을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의로움을 덧입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야 합니다. 스스로의 의로 들어가는 자는 버림받을 것입니다.” 자신의 공로로 구원받으려는 자들 즉 율법주의 자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라고 봅니다. 스펄전은 예복을 회개의 증거와 변화된 신앙으로 보았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초청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출석한다고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고, 성령의 역사로 변화된 자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예복은 "그리스도의 의와 변화된 삶"을 상징 합니다. 단순한 초청 즉 교회 출석, 신앙 고백이 참되면, 믿음과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비유는 오늘날에도 신앙이 형식적이거나 외적 신앙만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경고가 됩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 즉 거짓 신자들에 대한 경고로 해석합니다. 왕이 12절에서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에 들어왔느냐?"라고 질문할 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침묵하다"는 헬라어의 의미는 이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나타냅니다. 스펄전 목사는 "자신의 의로 하나님 앞에 서려는 자는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칼빈은 "참된 신앙은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게 하셨으."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랐지만 참된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존 번역의 천로역에서 나오는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위선자들입니다. 이들은 담을 넘어 순례자의 길에 들어오지만,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외적인 형식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내적인 변화 없이 종교적 행위를 합니다. 신앙의 위선자였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실한 믿음이 없습니다. 이들은 결국 어려움이 닥치자 믿음을 버리고 길에서 사라집니다. 또 이 사람은 천로 역정에 나오는 나태, 태만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순례자의 길에 누워 잠을 자거나, 느슨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으나 반응하지 않고 계속 안일함 속에 머뭅니다. 이는 마태복음 22장에서 초청을 받고도 무시하는 자들과 닮았습니다. 순례자의 길을 따라가다가 어려움이 닥치자 곧바로 돌아서는 인물입니다. 그는 일시적으로 신앙에 관심을 가지지만, 진정한 뿌리가 없어 시험이 오면 쉽게 떠납니다. 이 사람은 천로 역정에 등장하는 절망의 감옥에서 죽은 불신자입니다. 이들은 초청을 받았으나 자신의 불신앙과 두려움 때문에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가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좌절 속에서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의로 옷 입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그리스도의 의를 입은 자입니다. 오늘 나는 정말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고,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초청받은 자는 많되, 선택받은 자는 적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22:13-14에서 답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응답의 결과 최후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13절 왕은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고 명령합니다. "바깥 어두운 곳"은 유대인의 종말론적 표현으로, 하나님과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표현은 지옥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상태를 뜻한다"라고" 말합니다. 14"택함 받은 자는 적다"에서 "택하다"는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를 뜻합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인간의 거부가 맞물려 구원의 최종 결과가 결정된다"라고다" 설명합니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6:44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 많은 사람이 교회에 있지만, 모두가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구원받아야 합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부르심 즉 외적 부르심과, 선택 즉 내적 부르심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초청을 받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책임도 강조하며, 참된 믿음과 순종이 없다면 우리는 선택된 자가 아닐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라면, 반드시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나는 단순한 초청자 즉 즉 교회 출석자인가? 아니면 참된 믿음으로 선택된 자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선택된 자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 예수 믿고 교회에 나올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선택받은 자들의 반열에 속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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