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대하 7:13-14
2. 명제: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회복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다. (예언적 명제)
3. 제목: 회복의 약속
대하 7:13-14장은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완성하고 봉헌한 후,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솔로몬은 B.C 970년에 이스라엘 왕이 되었고, 그의 통치 기간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을 완성하였습니다. B.C 959년,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성전을 택하셨다고 알려졌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앞으로 재앙이 일어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관계와 응답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역경 가운데서 회복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13-14절을 다시 한번 읽읍시다. “13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 대하 7:14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오늘 본문은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회복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금 국가적인 큰 재앙 가운데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여러 문제 가운데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경 가운데서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회복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어떤 조건들이 요구될까요?
1. 겸손이 요구됩니다.
14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스스로 겸비하고” 내 이름이란 하나님의 이름, 신약에서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이름은 하나님 자신의 인격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여기 내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 구약 이스라엘, 신약 교회,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지칭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로, 하나님은 특별히 그의 백성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역경을 만날 때 회복을 위해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스스로 겸비하고’ 이 말의 본래 의미는 무릎을 '굽힌다', 따라서 '낮춘다', ‘복종하다, 겸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겸손은 자발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강제적인 겸손은 참이 아닙니다. 역경을 만날 때 하나님의 회복을 원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요구되는 첫 번째 조건은 자발적인 겸손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스스로 겸비하고” 왜 하나님은 회복의 약속을 받는 조건으로 겸손을 가장 먼저 요구하셨을까요? 그 답은 겸손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가난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 5:5절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가난한 마음은 천국을 보게 됩니다. 가난한 마음이 열린 마음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역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회복 축복을 누리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겸손입니다. 겸손의 표시가 무엇입니까? 회개와 감사라고 생각합니다. 기도 시 회개부터 시작하거나 감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겸손의 태도입니다. 감사는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시인하는 마음에서부터 나옵니다. 기도 시 회개와 감사를 먼저 드립시다. 히스기야 왕이 회개하자 하나님이 내가 너의 눈물을 보았다 하시면서, 죽을병에서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되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악인도 회개하니 심판이 잠시 유보되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왕상 21:29에서 악한 왕 아합에 대하여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겸손의 반대인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대하 26: 16-23절에서 웃시야 왕이 제사장 만이 할 수 있는 성전에서 분향드리는 일을 왕 자신이 하겠다고 교만을 부리다가 문둥이가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축복 받는 조건으로 내 백성의 겸손을 요구하실까요? 답은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대하7:13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세상이 어려워도 그의 백성에게는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그의 백성을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이 회복의 근원입니다. 주의 사랑이 식어집니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사랑이 나의 모든 삶의 원천입니다. 바울은 주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십자가는 나를 향한 주님의 천 번의 죽음입니다. 그 사랑 앞에 우리가 겸손히 설 때 역경 가운데서도 회복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역경 가운데서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회복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어떤 조건들이 요구될까요??
2. 우선순위의 기도가 요구됩니다.
14절‘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겸손은 마음의 자세라면, 기도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아뢰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대화입니다. 내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입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한다는 뜻은 하나님 자신을 먼저 구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먼저 구하는 기도입니다. 기도 시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실 보따리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기도의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왜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야 할까요? 그 답은 기도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 즉 회복의 기도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마음 생각을 먼저 묻는 것이 순서입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문제가 생기면 항상 먼저 하나님께 묻고 그 뜻대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의 습관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나의 기도는 다고, 다고의 기도는 아닙니까? 아니면 뜻 뜻 뜻을 묻는 기도입니까? 주님도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역대하 1장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솔로몬아,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구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주께서는 내 아버지 다윗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택하시어 아버지를 이어 큰 나라와 땅의 먼지같이 많은 백성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백성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주십시오. 하나님이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너는 나에게 바른 것을 구했다. 너는 부와 명예를 구하지 않고 장수도 구하지 않았고, 원수의 죽음도 구하지 않았다. 오직 내 백성을 인도할 지혜와 지식을 구했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어떤 왕도 누리지 못할 부와 명예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 즉 하나님의 뜻 그리고 하나님 앞에 바른 것을 먼저 구하면 다른 것은 덤으로 주십니다. 국가적인 역경 가운데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기도는 우리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교회의 본질 즉 첫째는 하나님 사랑, 둘째는 이웃 사랑의 본질에 바로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 역경 가운데서도 회복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역경 가운데서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회복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어떤 조건들이 요구될까요?
3. 회개가 요구됩니다.
‘그 악한 길에서 떠나.’ 그 악한 길에서 나쁜 길, 나쁜 태도, 나쁜 행위, 나쁜 마음의 동기들에서 떠나, 떠나라는 동사의 의미는 돌아서다. 회개의 의미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이 죄라고 인정하는 것을 시인하며, 그 나쁜 길에서 행동으로 떠나가며, 버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회개는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고 행동까지 포함합니다. 앞의 겸손은 마음의 회개라면, 여기 회개는 행동을 더 강조합니다. 세례요한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처음 하신 일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였습니다” 세례요한의 회개 말씀에는 악한 행위들을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회개의 구체적인 행동 즉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이라고 명령합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명령합니다. 공무원들은 부과된 세금 외에는 더 받지 말라, 군인들은 강탈하지 말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로 족한 줄로 알라고 명령했습니다. 회개란 하나님이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인정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로마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부자가 된 세금 공무원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내가 토색 한 것이 있다면 4배나 갚겠나이다”라고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찾아왔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 악한 길에서 떠나, 하나님이 죄라고 지적하는 것을 인정하고 버리는 회개를 한다면, 하나님이 역경 가운데서라도 축복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왜 회복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할까요? 그 답은 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옵니다. 죄에서 용서함 받기 위해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회개하여 즉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예수님을 나를 죄에서 건져내신 나의 구원자요,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구원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죄 없다고 여겨 주십니다. 이것을 칭의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칭의 구원은 하루 중 전신 목욕을 한 것과 같습니다. 칭의 구원은 일생 한번 발생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죄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웨스트 민스트 소요리 문답서에는 “하나님은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의 죄를 계속적으로 용서하십니다. 그들은 의롭다 함을 받은 상태에서 결코 떨어질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로서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그들이 자신을 낮추고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믿음과 회개를 새롭게 하기 전에는 그들은 회복된 하나님의 얼굴의 빛을 불 수가 없습니다.”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하루 중 전신 목욕을 하고 나서도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손과 발이 더러워집니다. 그러면 손과 발은 하루 중 여러 번 물로 씻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어 구원받은 백성들은 죄를 지으면 구원받기 위해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즉 이미 목욕을 한 사람은 손과 발만 자주 씻으면 돼 듯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십자가 앞에 가지고 와서 하루 중 몇 번이라도 십자가 보혈의 피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죄는 기도 응답을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회복 축복을 놓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체 말고 오늘 당장 죄를 회개하고 버리십시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서는 “아무리 작은 죄라도 저주를 받는 대상이 안 되는 죄는 없는 것 같이 아무리 큰 죄라도 참으로 회개하는 자에게까지 저주를 가져오는 것은 없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롬 6:23절”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중국 고사에 ‘양호유환’이란 말이 있습니다. 죄의 속성은 새끼 호랑이와 같습니다. 새끼는 다 귀엽습니다. 어떤 사람이 호랑이 새끼를 키웠습니다. 귀엽던 새끼 호랑이가 성장해서 어른 호랑이가 되자 주인을 잡아먹어 버렸다고 합니다. 죄와 싸우데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죄를 그냥 두면 견고한 진이 되어 버립니다. 나의 악한 습관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마귀는 합법적으로 그 견고한 진을 통해서 나를 짓밟습니다. 중독이 그런 유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듣고’ 왜 하나님의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하늘에서’ 들으십니까? 그 답은 하나님의 사랑의 인격과 능력을 걸고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리를 따라 기도 응답을 확신해야 합니다.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의지하여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눅 18: 1-8절“ 주님이 기도하실 때 낙심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마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한 과부가 그 재판관에게 와서 자기 원한을 풀어 달라고 요청을 하지만 듣지 않고 무시합니다. 그래도 그 과부는 포기하지 않고 나의 원한을 풀어 주세요. 너무 억울합니다. 하소연했습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다가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지만, 이 과부가 나를 귀찮게 하니 간청을 들어줘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주님께서 이 불의한 재판관의 말을 들어라.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하나님이 선택된 백성들의 간청을 듣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미루시겠느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속히 정의를 베푸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이 세상에서 이 믿음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믿음이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이심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 주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믿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죄를 사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들의 죄를 사하실까요? 그 답은 사랑의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받지 못하는 데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습니다. 회개의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요. 용서받기 위해 주님 앞에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두 강도 중 한 강도는 구원을 받았고, 다른 강도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왔느냐 안 돌아왔느냐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왜 주님 앞에 오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느 어린아이가 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자신이 아버지에게 전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예수님을 믿으시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울면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아빠, 천국에서 하나님이 "왜 너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안 믿습니까?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땅을 고칠지라.’ 왜 하나님은 땅을 고칩니까? 그 답은 하나님은 치유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복음 즉 기쁜 소식입니다. 눅눅4: 18-19에서 “가난한 자를 부유케 하면 눈먼 자를 보게 하고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며 눌린 자를 해방시켜 기쁨과 자유를 주로 오셨습니다.” 이 복음을 누려야 합니다. 이 복음을 믿고 주장하십시오. 지금 우리는 국가적인 대 재앙으로 혼돈 가운데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여러 문제 가운데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우리의 병든 모든 문제를 들고 예수님 앞에 찾아오십시오. 먼저, 겸손한 자세로, 감사하면서, -주의 뜻을 먼저 물으시고,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나의 죄들을 깊이 회개하시고 버리십시오. 그러면 역경 가운데서라도 용서와 치유와 회복의 축복이 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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